딸기네 책방

재밌게 읽고 다 까먹은 '장자크 루소'

딸기21 2007. 6. 22. 11:42
728x90

장 자크 루소와 국제정치 

김용구 (지은이) | 원(이보란) | 2004-08-30 


이 모든 것이 평화스럽게 그리고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외눈거인 Cyelope 의 지하실에 감금된 채 삼켜지기만을 기다리는 율리시즈 친우들의 평온함이다. 신음을 하면서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 이 공포의 대상 위에 씌워진 영원한 베일을 벗겨 보자. 눈을 들어 먼 곳을 응시한다. 화염에 쌓인 불길, 황폐한 촌락, 노략질 당한 도시들을 본다. 이 잔인한 인간들아! 이 불행한 군중들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 것이냐? (95쪽) 


결국 국민 전체에 의한 약속은 최후의 구성원 보존에 대해서도 그 밖의 모든 구성원 보존을 위한 것과 같은 배려를 제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단 한 시민의 행복이라도 그것이 국가의 그것에 비하면 공동관심이 아니란 말인가? 한 사람의 개인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할 때 그것이 자기 나라의 번영을 위해 자원해 의무로서 죽어 자기를 희생한 훌륭하고 덕성 있는 애국자의 입에서 나오는 선언이라면 나는 경탄한다. 그러나 다수의 번영을 위해 정부가 한 무고한 자를 희생시킬 것이 허용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이 원칙이야말로 기왕의 폭정이 창안한 가장 가증스러운 것 중의 하나이며, 내걸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위선적인 것이고 인정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위험스러운 것이며, 사회의 기본 법률에 가장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다. (144쪽) 소유자의 재산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축재할 수단을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제함으로써, 그리고 빈자를 위한 양육원을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빈곤하게 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재산의 극심한 불평등을 예방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다. (146쪽) 


장자크 루소라니. 정치의 정 자에도 관심 없는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습게 느껴져서, 읽는 동안 ‘왜 읽고 있나’를 여러번 생각했다. 사무실에서 굴러다니던 책을 말 그대로 ‘주웠다’. 하드커버 책자를 그냥 버리긴 좀 아까워서 집에 가져다놓았다가, 홈플러스 문화센터에 아이 데려다놓고 기다리는 동안 꺼내 읽었다. 어지간히 우스운 일이다. 홈플러스 문화센터 소파에 앉아 장자크 루소를 떡하니 꺼내놓고 읽는다는 건. 


조그맣게 쓰여있는 책의 부제는 ‘영구평화를 위한 외로운 산책자의 꿈’. 미용실에서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트리니티 강연 50주년 기념 논문집을 읽었던 것에 비견되는, 분위기 파악 안 하고/못 하는 나같은 자들만이 할수 있는 짓 같기도 하고. 어쨌든 책은 재미있었다. 정치학에 대해 뭘 통 모르니 이렇게 유명한 책에다가 토를 다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난 권위 앞에 한없이 비겁해질 수 있는 독자이니까. 그런데 읽다보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사회 시간에 배웠던 홉스-로크-루소가 생각났다. 홉스는 리바이어던, 만인대 만인의 투쟁. 로크는 반대, 루소는 종합.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이렇게 정리돼 있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이 자연권을 지배자에게 위양함으로써 평화적인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여, 17세기 절대왕정제 이론을 성립시켰다. 로크는 계약에 의해서도 생명·자유·재산 등의 자연권은 지배자에게 위양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입헌군주제의 이론을 선도하였다. 그리고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 원인을 사유재산에 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회계약에 입각하여 각인이 자유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자연상태를 구상하였다. 즉 인민의 일반의지로서의 국가가 자유 평등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프랑스혁명의 이론적인 근거를 세웠다.”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출신, 학술원 회원-- 전형적인 서울대의 ‘늙은 교수’가 떠오른다고 한다면, 편역자에게 죄송스런 얘기가 되겠다. 책은 루소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지극히 전문적이고 재미없는 해설, 그리고 루소의 몇몇 글들로 구성돼 있다. 편역자가 일본책들로 공부하신 분인지 일본 한자 표현이 좀 눈에 띄었지만 가끔씩은 오히려 예스러워서 정답기도 했다. 


뒷부분 ‘전쟁상태론’과 ‘정치경제론’에 유명한 루소의 ‘홉스 비판’이 나온다. 루소라는 사람의 통찰력이 번쩍번쩍 하는 듯한 부분도 있었고, 어쩌면 오늘날의 유럽연합에서 벌어지는 논란들을 예고하는 듯해서 눈길 끄는 부분들도 있었다. 전반적으로 즐거운 독서였는데 읽고 좀 지나니 머리 속은 금세 백지가 됐다. 정치이론은 어째 기억에서 오래 머물지를 못한다. 내 단백질과 안 맞는 모양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