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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제국-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가려진.

딸기21 2006. 10. 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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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제국
에가시라 히로시 (지은이) | 이정환 (옮긴이) | 달과소



요사이 러시아에 관심을 좀 가져볼까 했는데 워낙 아는 바가 없고, 가장 걸리는 것은 푸틴이라는 인물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참 냉혹하게 생긴 인상이다. KGB 출신이라고 하고, 체첸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때에는 자기네 국민들도 가차없이 희생시키고. 


외신사진에 나오는 푸틴의 모습은 너무나 차갑고 뱀같고 유령같다. 최근 들어 ‘친숙한 모습’을 선보이려는지 어린아이와 사진을 찍고 무술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심지어 몇 달 전에는 네티즌들과 ‘웹 대화’까지 했다는데, 그래도 이 사람의 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의 인상을 한마디로 하면 ‘냉혹함’이다. 난 그 인상이 너무 싫고 무서워서 어떤 때는 푸틴 얼굴 사진으로 보는 것도 싫다. 정말 정내미 떨어지는 얼굴. 


내 궁금증은 단순한 것이다. 그런데 왜 러시아인들은 푸틴을 좋아할까. 어째서 70% 넘는 지지율로 그에게 재선을 안겨준 것일까. 외신들로만 보면, 러시아 사람들은 푸틴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만 같다. 자기에게 대드는 기업인은 가차없이 체포해버리는 걸 보면 푸틴이란 작자, 민주주의 할 사람은 결코 아닌 것 같은데 국민들은 그를 좋아한다고 한다. 올리가키에 대한 반감 따위를 정치에 적절히 이용하고 국민들의 ‘강한 러시아’ 희구심리를 자기 인기로 전화시키는 놀라운 정치력의 소유자?

니혼게이자이신문 모스크바 특파원 출신인 저자는 이 책에서 옐친 정권 말기부터 2003년까지 러시아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난 이런 식으로 ‘눈으로 보는 것 같이’ 묘사하는 건 영 미덥지 않아 싫어하는데 이 책은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러시아 최근 상황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놓은 것은 마음에 든다. 


그런데 정작 푸틴에 대한 설명은 없다. 푸틴의 제국이라는데 푸틴은 어디에? 제목으로만 보면 이건 순 ‘낚시질’이다. 현재의 러시아를 ‘푸틴의 러시아(이 책의 영어제목)’로 부를 수 있을지 어떨지도 잘 모르겠다. 만일 러시아가 푸틴의 제국이라면, 그렇게 되는 과정은 현재진행형이고, 평가는 한참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으로만 보자면 러시아는 푸틴의 제국이 아닌 '츄바이스의 제국'이다. 저자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무명이었던' 푸틴이라는 자의 놀라운 정치적 성공의 비밀을 풀어놓는 대신, 1990년대 말 이래 러시아에서 벌어진 민영화와 관련된 이전투구, 그리고 푸틴 정권 내 이권다툼 같은 것들을 설명하는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 핵심에 서있는 인물은 츄바이스와 베레조프스키다. 아쉽게도 이 책의 글쓴이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잘 하는데 '사람'을 설명하는 데에는 영 젬병이다. 결과적으로 푸틴도, 츄바이스도, 베레조프스키도, 내면의 동력을 들여다보며 생생히 캐릭터를 재구성해내는데 실패해 '신문기사 속 인물'의 수준을 거의 벗어나지 못한 꼴이 됐다.


내 궁금증은 풀어주지 못했지만, 어쨌든 적당히 '저널리스틱'하면서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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