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 The European Dream (2004)
제레미 리프킨 (지은이) | 이원기 (옮긴이) | 민음사 | 2005-01-18
외신 기사를 인용할 때 종종 ‘국제사회’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국제사회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신문에서 ‘국민여론’을 얘기하는 것과 비슷할 텐데, 실체가 없는 것 같지만 ‘국제사회’나 ‘국민여론’이나 분명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뭉뚱그려 왜곡하기 쉽다 뿐이지, 국제사회나 국민여론이 존재한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계획이 국제사회의 반발에 부딪쳤다”고 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국제사회’는 통상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 이를테면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런 개별 국가들을 가리킨다.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 있는 나라들 상당수가 미국의 계획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밝혔다면 미국은 국제사회의 반발에 부딪친 것이 된다. 어떤 때는 개별국가들 뿐 아니라 유엔 같은 국제기구나 국제앰네스티처럼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들이 국제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 뒤로, 특히 이라크 공격을 운운하기 시작한 이래로 미국은 번번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러시아나 중국이나 중동 국가들이 미국에 눈총 주는 건 그렇다 치고, 유럽과 미국의 간극은 그야말로 주목할만한 현상이었다.
막가파 부시보다 더 느끼하게 생긴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는 왜 번번이 미국에 반대할까? 불독처럼 생긴 게르하르트 슈뢰더(지금은 우파 메르켈에게 자리를 내줬지만)는 왜 미국에 반대할까? 한때 시라크는 ‘제3세계 지도자’라도 되는 양 떠올랐고, 미국과 다름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정치생명의 열쇠인 것처럼도 보였다. 물론 단면도를 잘라보면 겹겹이 쌓인 지층들,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층위의 여러 가지 현상과 분석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은 정말 미국과 다른가? 유럽은 어떤 점에서 어떻게 미국과 다른가? 유럽은 미국보다 덜 오만하고 환경친화적이고 다원적 민주적인가? 유럽은 계속 미국과 다른 길로 갈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네들 이익 챙기기에 몰두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 아닌가? 유럽이라는 것이 단일한 실체인 것도 아닌데 뭉뚱그려 말할 수 있을까?
리프킨은 저런 질문들에 모두 ‘예스’라고 말한다. 느낌표까지 찍어서 ‘예스!’. 아예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도 빨리 유럽을 따라가야 한다’고까지 하는 듯하다. 리프킨이라는 인물도 그닥 단순한 사람은 아닐 터이고, 예스라는 대답 뒤에는 이런저런 여러 가지 설명들이 붙을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정말 하나부터 끝까지) 쟁점들을 대하는 유럽과 미국의 태도, 언술은 분명 다르다. 미국은 개인주의가 최고라고 하는데 유럽은 보편적 인권이 개개인의 행동을 아주 세세한 수준까지 규정하는 법체계 그 자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에너지 펑펑 써서 개발하고 발전하면 최고라고 얘기하는데 유럽은 어머니 지구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에너지 덜 쓰는 길로 나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돈이 최고이고 빨리 많이 돈버는 효율성이 지상과제라고 하는데 유럽은 아름다운 여가와 가치있는 인생이 최고라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시계가 빨리빨리 안 돌아가 난리이고, 한쪽에서는 시계가 빨리 돌아가는 걸 욕한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 미국은 오만하고, 유럽은 가끔 오만하지만 그래도 덜 오만하려고 애쓰고, 오만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한다. 한쪽은 힘이면 다 되는줄 알고, 한쪽은 그래도 대화와 협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얼핏 보기에 유럽은 미국과 다른 얘기를 하고, 다른 길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정말일까? 딱 보기에 미국보다 유럽이 훨씬 착하고 똑똑하고 올바른 것 같은데 말이다. 믿을 수 있을까?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길로 가겠다는 유럽을 믿을 수 있을까? 힘이면 다 되는 이 세상에서 유럽의 저런 생각 저런 말, 진심일까?
리프킨은 일단 포인트를 잘 잡은 것 같다. 그는 유럽과 미국이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주 중요한 변화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런 변화의 조짐이 ‘진짜’일까 하는 점일 터인데. 저자는 ‘진짜’라는 전제 하에 유럽의 새로운 가치관, 유럽이 내놓은 새로운 방향성이 지구 전체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럽 내에도 여러 다른 목소리들이 있고 좌가 있고 우가 있고 진보파가 있고 꼴통들이 있지만, 유럽 이 나라 저 나라 입장들이 다르고 그래서 아직은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분명 변화의 흐름은 시작됐고 그것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길이라는 것이다.
유럽이 새롭게 내놓은 가치관(개인의 욕망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아메리칸 드림’ 대신 저자가 ‘유러피언 드림’으로 명명한)이 세계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가. 유럽에서 시작돼 세계를 지배했던/지배하고 있는 저 단선적이고 직선적이고 위계적이고 계몽적인 세계관이 다시 유럽에서부터 바뀌어갈 수 있을 것인가.
유럽의 거대한 실험은 단순히 ‘유럽연합 결성’이라는 정치 시스템의 문제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많지만’ 앞선 질문들에 대한 리프킨의 대답은 과감히 ‘모두 예스!’인 것이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이라는 배경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기에, 철저하게 일국(一國)을 전제로한 것이기에 글로벌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본질적으로 국경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유러피언 드림은 국경을 넘어선 그 무엇, 민족국가의 영토적 경계를 떠나있는 새로운 어떤 정체성과 연관된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계몽주의의 프로젝트를 완전히 벗어난 그 무엇이며 우리 머리 속 ‘국가’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바꾼 어떤 정체성과 관련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것은 ‘새로운 도덕성’과 연결된 문제다. 인권과 환경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회를 우린 아직 가져본 적이 없는데 유럽은 지금 그걸 꿈꾸고 있다. 유럽을 너무 치켜세우는 것 아니냐고? 유럽의 ‘현재 모습’과 별개로, 어쨌건 유럽연합의 이상은 그런 것이다!
그 안에서 이상주의자들과 현실주의자들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조율해갈 것인지, 그들의 실험이 실패할 것인지 성공할 것인지는 그야말로 그들에게 달려 있다. 다만 우리는 그들의 실험이 너무나 새롭기 때문에 주목하는 것이고, 그들의 실험이 성공해서 잘난 미국도 따라가기를 바랄 뿐이다!
처음 펼쳤을 때엔 ‘내가 또 뭣 때문에 리프킨의 책에 돈을 들였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리프킨의 책들을 몇권 읽어보았는데(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엔트로피’는 못 읽어봤지만) 모두 재미있었다. 누구의 말마따나 ‘나이브한’ 측면이 없잖아 있지만, 분명 리프킨에게는 시대를 앞서 묘사하는 능력이 있다.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그런 것이고, 통찰력이라면 통찰력이다.
아무튼 바이오테크 시대,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실은 이 책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좀 헷갈린다), 수소혁명, 모두 재미있으면서 약간씩 허전한 구석을 남기는 책들이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부족한 2%’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분명 사례를 많이 제시하고 통계도 많이 언급하는데 왜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것이 내 의문이었고, 리프킨의 책에 더 이상 돈을 들이고 싶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리프킨의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어느 후배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그저 이 책을 같이 한번 읽어보자는 제안 때문에 다시 손을 대게 됐다.
어쩌면 리프킨이 남겨주는 허전함은, 그의 통찰력이 좀 많이 앞서있는 것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엔트로피, 비평형 열역학, 일리야 프리고진, 비유클리드 기하학, 복잡계.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수소혁명, 바이오테크, 모두 좀 앞서갔다. 틀린 관찰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통찰력은 참 반짝반짝했다. 그다지 재치있는 문체는 아니지만, 어딘가 허술한 듯 하면서(앞서나가려니) 반짝거리는 통찰력이 있어서 그의 생각들은 재미가 있었다.
앞서나가는 탓에 부족한,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 이 책 ‘유러피언 드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줄간격 너무 넓고 여백이 많고 하드커버에 2만2000원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엔트로피에서 노동의 종말과 바이오테크 사이를 넘나들다가 훌쩍 ‘아메리카와 유럽’의 문제로 건너뛴 걸 보면 리프킨은 분명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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