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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자서전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딸기21 2006. 10. 1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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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자서전 -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Long Walk to Freedom: The Autobiography of Nelson Mandela (1994년)
넬슨 만델라 (지은이) | 김대중 (옮긴이) | 두레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투사로 인종차별 철폐 투쟁을 벌이던 만델라 할아버지는 아프리카 흑인 이웃나라들을 돌면서 지원을 호소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감옥에 가기 전 탄자니아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니에레레 대통령(탄자니아 대통령)은 내가 음베야로 갈 때 그의 전용기를 빌려주었다. 거기서 다시 로바체로 가는데 조종사가 내게 카니에에 착륙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왜 계획이 변경되었는지 걱정스러웠다. 카니에에 내리니 지방 치안판사와 보안관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지방 치안판사는 내게 다가오더니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데이비드 모차마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의 진짜 이름을 대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데이비드 모차마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저에게 진짜 이름을 말하십시오. 나는 여기서 만델라 씨를 만나서 그를 도와주고 수송을 제공해주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당신이 넬슨 만델라 씨가 아니라면, 유감스럽지만 나는 당신을 체포해야겠습니다. 당신은 비자 없이 이 나라에 입국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넬슨 만델라 씨가 맞습니까?”
나는 난감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어차피 체포될 것 같았다. “만약 당신이 내가 데이비드 모차마이가 아니고 넬슨 만델라라고 우긴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우기지는 않겠소”라고 말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우리는 어제 당신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의 동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451쪽)

다음은, 유명 변호사였던 만델라가 죄인으로 체포돼 법정에 섰을 때의 일을 회고한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판사는 의기소침하고 언짢아보였으며 나를 똑바로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다른 변호사들도 난감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의외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단지 동료 법조인이 이제는 몰락하여 피고석에 서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신념 때문에 처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이전에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어떤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고인으로서 법정에 선 나의 역할 그리고 내 앞에 놓인 가능성이었다. 나는 압제자의 법정에 선 나의 역할 그리고 내 앞에 놓인 가능성이었다. 나는 압제자의 법정에 선 정의의 상징이었고, 자유와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회에서 이 위대한 이상들을 대변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나는 적의 요새 안에서도 투쟁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464쪽)

만델라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읽은 지 한달 정도 지났다. 이 책에 대해서, 만델라 할아버지와 남아공이라는 나라, 아프리카라는 지역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정치(精緻)하지 못한 글이 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내 마음 속에 정리해놓고 싶은 이야기,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을 힘겨운 투쟁에 바친 한 사람 앞에, 멀리 떨어진 서울이라는 곳에 사는 이 아줌마의 이야기가 그리 길어질 이유가 뭐 있겠느냐 싶기도 하지만, 만델라라는 인물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델라는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몇 번을 갖다 붙여도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시련을 이겨낸 투지와 용기만 해도 ‘위인전’ 거리가 되고도 남지만 만델라를 더 큰 인물로 만드는 것은 집권 이후에 보여준 능력이다. 만델라가 28년간의 수감생활 뒤 감옥에서 나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남아공 사람들이 만델라에게 갖는 존경심은 ‘투쟁-승리’만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만델라의 ‘능력’에는 집권 뒤 보여준 포용력, 관대함, 결단력, 사심 없음, 애국심, 진지함, 의리 같은 것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앞서 인용한 탄자니아 에피소드에서 보이는 것 같은 센스(!)도 거기 포함된다.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Long Walk to Freedom.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하지만 좀 많이 두꺼운) 이 자서전은 만델라 할아버지의 솔직하고 담담하고 진지한 인생이야기다. 투쟁과 고뇌와 슬픔과 실망과 용기와 동지와 사랑과 승리의 기록.

만델라 인생 첫 부분, 부족사회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아주 예스럽다. 학교 다니면서 공부한 이야기, 요하네스버그에 가서 변호사로 활동하기까지, 첫 결혼, 투쟁에 발을 담그게 된 과정이 ‘아무 일도 아니었던 듯’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 원주민 소년이 백인사회에서 변호사가 되기까지의 길은 얼마나 험난했을까. 어린 시절, 젊은 시절, ANC 투쟁을 이끌던 시절, 감옥시절, 그 이후 집권까지 어느 한 시기, 힘들지 않은 시기라고는 없었다.

가족에 대한 부분들도 눈에 띈다. 딸 진드지의 첫 면회, 아들이 죽었을 때 담요 뒤집어쓰고 누운 이야기, 면회실에서 안아보게 된 갓난 손녀... 투쟁하는 사람으로서 가족을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비애.

나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되찾고, 젊은 시절 나의 인생으로부터 오래된 실을 뽑고, 아침에는 사무실에 나갔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고, 약국에 들러서 치약을 사고, 저녁에 옛 친구를 방문하는 것을 갈망해왔다. 이러한 일상적인 일들이 내가 감옥에 있을 때 가장 그리워했던 일이며, 내가 자유롭게 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재빨리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밤 이후로 몇 주 동안 매일 밤, 나의 집은 수백 명의 지지자들로 에워싸였다.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질렀으며, 그들의 기쁨은 쉽게 퍼졌다.
그들은 나의 민족이었고, 나는 그들을 거부할 권리도 욕망도 없었다. 그러나 내 자신을 나의 민족에게 양보하자 또다시 내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821쪽)


전략·전술을 둘러싼 논쟁과 고민은 책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또한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공산당과 ANC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무장투쟁에 뛰어들 것인가 말 것인가에서부터, 집권 뒤 ‘진실과 화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원칙적이면서 또한 실용적인, 만델라라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데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이런 논쟁거리들에 대한 설명들이다. 로벤 섬에 갇혀있던 만델라와 그 동지들은 ‘아프리카에 호랑이가 있었나 없었나’를 놓고서까지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감옥에서 괴어 썩지 않게 만들고 그들을 더 단련시켰던 기나긴 싸움은 무장투쟁 못지 않게 흥미롭다.

요사이 친해진 샐리라는 친구가 있다. 샐리는 남아공의 항구도시 더반 출신이다. 샐리의 친구는 대학시절 우편물 폭탄에 희생됐다고 한다. 반투 스티브 비코 일생을 담은 책에서도 그런 걸 느꼈지만, 흑백 차별 사회였다고 해도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책에서 만델라는 백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대신 백인 ‘동지들’의 투쟁에 대해서도 아낌없는 경의를 표한다. 남아공 백인들에 대한 부분에서는 특히 선입견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부분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서울에서 만난 남아공 사람들은 모두 백인들이었는데 실제로 그들은 아파르트헤이트의 과오를 인정하는데 인색함이 없었다. “우리(백인들)는 나빴다. 하지만 만델라는 우리를 끌어안았다. 그래서 피로 물든 내전 없이 흑백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과오로 점철됐던 나라이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흑백 관계없이 만델라를 존경한다.”

앞서 이 책은 아태재단에서 출판된 적 있는데 이번에 김대중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김대중이라는 사람의 인생역정이 머리 속에 겹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생략.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부분은 요즘 내 관심사(아프리카)와 연관되어, 만델라의 동지들에 대한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내 조국과 국민들에게 깊고 오랜 상처를 남겼다. 우리 모두는 그 심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 여러 세대 또는 적어도 여러 해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의 억압과 잔인함은 또 다른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것은 바로 억압과 잔인함이 우리 시대에 올리버 탐보, 월터 시술루, 추툴리 추장, 유서프 다두, 브람 피셔, 로버트 소부퀘와 같은 대단한 용기와 지혜와 관용을 지닌, 내가 다시는 알지 못할 그런 사람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런 고귀한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토록 심한 억압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나의 조국은 땅 속에 묻혀 있는 광물과 보석이 풍부하나, 나는 항상 우리 나라 최고의 재산은 순수한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훌륭하고 진실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897쪽)

아래층 협의실에서 우리는 종종 종이에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했다. 종이는 사용 후 태워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우리를 감시하던 특수부 장교 가운데 스와네포엘이라는 중위가 있었는데, 퉁명스럽고 얼굴색이 붉은 이 사람은 우리가 항상 자신을 속인다고 믿고 있었다.
어느 날 스와네포엘이 문에서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때, 고반 음베키가 극도로 조심스럽게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역시 조심스럽게 그는 내게 쪽지를 건넸다. 나는 그것을 읽고 점잖게 고개를 끄덕인 후 케이시에게 쪽지를 건넸다. 케이시는 보란 듯이 쪽지를 태우기 위해 성냥을 꺼냈다. 그때 스와네포엘이 방을 급습했다. 케이시에게서 쪽지를 뺏은 그는 방에서 성냥을 켜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자기의 전리품을 읽기 위해 방을 나갔다. 몇 초 뒤 그는 “나는 이 일로 너희 모두를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말하며 황급히 돌아왔다. 고반이 대문자로 쓴 말은 “스와네포엘 녀석 잘생기지 않았소?”였다. (525쪽)

이 에피소드를 비롯해 책 곳곳에 등장하는 고반, 즉 월터 시술루 그리고 올리버 탐보와 함께 만델라 할아버지의 빼놓을 수 없는 동지였던 고반 음베키는 현재 남아공 대통령인 타보 음베키의 아버지이다. 만델라는 집권 뒤 백인정권 대통령이었던 데 클레르크(현지 발음으로는 데 클럭이라고 하던데;;)와 동지의 아들 타보 음베키를 나란히 부통령으로 앉혔다.

어떤 부분에서 책은 유머러스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스파이 소설을 읽는 것 같다. 만델라 할아버지가 로벤섬 감옥을 떠나 케이프타운에 갇혀 있으면서 백인 정권과 담판을 벌이는 부분은 진짜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힘겨운 투쟁, 모진 고초를 겪은 뒤 세상에서 '큰 뜻'을 펼치게 됐을 때 가지가지 방식으로 결국 주변을 실망시키고 마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만델라가 28년의 수감생활 뒤 대통령이 되어 정치에 죽을 쑤고 측근들 부패하고 정책 개판이고 우향우 좌향좌 왔다갔다 했다면, 아마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은 흰소리로 남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그는 위대한 사람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책의 부록에 상세히 나와 있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에 대한 것이다. 요새는 '과거청산' '진상규명'이 희화화되고 비아냥거리가 된 느낌도 들지만, 남아공처럼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에서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과제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만델라의 생각은 분명했던 것 같다. "밝힐 것은 밝히자. 그러나 과거 때문에 미래를 희생시킬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데스먼드 투투 주교가 이끈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라는 것이다.

피부 색깔이나 가정 배경과 종교 때문에 다른 사람을 증오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증오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 마음에서 사랑은 그 반대보다 훨씬 더 본성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수감 시절에, 나의 동지들과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에, 나는 간수들 한 명 한 명으로부터 인간성을 보곤 했다. 아마도 이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인간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 주고 유지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착함이란 가려 있으나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898쪽)

옮긴이는 "만델라의 용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그의 믿음과 낙관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 그대로다. 오랜 수감생활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더우기 감옥에서 그의 낙관적인 인간관이 악화되기보다 더 강화되었다고 한다면.

"만델라의 화해와 용서는 이런 도덕적 관점 말고도 정치전략적 측면에서도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가 아프리카너들에게 더 많이 더 멀리 손을 뻗칠수록 백인 세력은 더욱 더 분열되고 더 빨리 무장해제되었다." (938쪽)

그렇게 해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전세계 곳곳에서 과거 청산과 국가적 조직범죄 진상규명의 한 모델이 됐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중남미, 동유럽, 아프리카 곳곳에 이런 기구들이 생겨났다. 물론 책 부록에 설명돼있듯 피해자들의 반발도 많다. 죄를 고백하면 용서해준다? 화해는 없고 사면만 있다는 비판도 있다. 끔찍한 죄를 저질러놓고 “내가 그런 짓을 옛날에 했었지” 말만 하면 모두 용서해준다니. 그러나 그것이 만델라의 노선이었다. ‘망각하지 않는 용서(forgive without forgetting)’.

그렇지 않았더라면 남아공은 내전으로 치달았을 수도 있었고, 훗날 ‘모두의 자산’이 될 백인정권의 성과물들이 무위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만델라는 그 함정을 피해갔다. 확신, 권위, 역사의식, 지혜, 책임감처럼 한 사람에게 한번에 구현되기 힘든 여러 덕목들이 만델라를 큰 길로 이끌었다. (다른 나라에서 진실과화해위원회가 실패했다면, 그것은 그 나라들에 만델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가 확고한 신념과 도덕적 권위, 미래를 위한 관대함 대신 형식논리와 정치적 명분과 눈치보기로 일관한다면 진실과의 조우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지난달 중순에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을 방문했다. 남아공은 아직까지도 ‘두 개의 나라’다. 특히 한국 교민들은 스스로를 백인들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그들과 주로 접했던 나로선 더 거부감이 느껴진 측면도 있지만, 참 살고 싶지 않은 나라였다. 넓은 땅, 경치 좋고 날씨 좋고 자원 많고. 그런데 요하네스버그는 흑-백 두 구역으로 나뉘어, 흑인 구역은 강도가 무서워 돌아다닐 수도 없다. 케이프타운의 화려한 상가는 백인들 세상이다. 흑인들 내부에서도 집권세력 기득권층들의 잇속 챙기기가 심한 듯싶고. 2010년 월드컵 때까지 이 나라가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하지만 만델라의 나라는 언제고 희망을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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