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보수주의가 더욱더 견고한 성을 쌓아가고 있는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모든 것’을 담은 백과사전이 출간됐다.
16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된 ‘미국의 보수주의’라는 백과사전은 근본주의자, 통화주의자, 연방주의자와 복음주의자 등 미국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보수주의 용어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총 997쪽에 이르는 이 백과사전은 1990년 갈랜드 출판사가 발간을 결정했으나 진척을 보지 못하다가 6년 뒤 ISI북스에 넘겨졌다. ISI북스 발행인인 제프리 넬슨과 미시건주 아베마리아법과대학 브루스 프로넌 교수 등이 편집을 맡아 지난 4월 완성했다. 책값은 권당 35달러(약 3만원)인데, 발간 두달만에 2만부가 팔렸다.
ISI북스는 1953년 보수주의 이념을 대학가에 설파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기관으로, 자신들에 대한 설명도 백과사전의 한 항목으로 등재했다. 뉴욕타임스는 21일 이 책이 나옴으로써 “미국의 보수주의가 스스로의 새로운 역사책을 갖게 된 셈”이라고 보도했다.
책은 익히 알려진 현존하는 정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주의의 기틀을 제공한 전(前) 시대의 정치학자들이나 사상가들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1967년 사망한 정치학자 윌무어 켄달은 보수파 정치인의 대명사 격이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3배에 이르는 분량을 차지했다. 미국인은 아니지만 미국 보수주의 정치이론에 영향을 미친 19세기 스위스 역사학자 야콥 부르크하르트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가장 긴 설명이 담긴 항목은 미국 보수파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시카고대 레오 스트라우스 교수의 정치이론 ‘스트라우스주의(Straussianism)’였다.
조지 W 부시 현대통령과 ‘신보수주의(Neoconservatism)’라는 용어가 올라있긴 하지만 아버지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나 대중적인 보수주의 저술가 앤 코울터, 현 공화당의 주축인 톰 딜레이 전 하원 원내대표, 칼 로브 백악관 정책실장 같은 뉴스 속 인물들은 대개 빠졌다. 발행인 넬슨은 “21세기에 보수주의가 성공하려면 요즘 워싱턴에서 하는 것 같은 방식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온 것 같은 전통적인 방식처럼 해야 한다”며 백악관을 장악한 이른바 네오컨(신보수주의자)들과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
정통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 책의 출간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켄달의 제자로 보수파 잡지 내셔널 리뷰 창간인인 윌리엄 버클리는 “뉴트(깅리치)보다는 켄달이 3배는 중요한 것이 사실이므로 적절한 배분이 이뤄진 셈”이라고 평가했고, 부르크하르트에 대해서는 “최근 50년새 보수파를 자처했던 상원의원 100명보다도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백과사전은 많은 부분에서 편향된 시각을 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평했다. 일례로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열정적이고 원칙적인’ 등의 말이 사용된 반면 빌 클린턴 전대통령은 ‘부패했다’고 못박았다. 지난달 현 공화당 정부와의 결별을 선언했던 보수파 인사 리처드 비게리에 대해서는 ‘자유주의 도깨비(liberal bogeyman)’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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