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그래도 하루키.

딸기21 2006. 1. 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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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의 데드 히트 回轉木馬のデシド.ヒ―ト (198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은이) | 권남희 (옮긴이) | 창해 | 2004-10-05 



올해 읽은 첫 책...치고는 썰렁하기도 하다.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하루키식의 희한한 제목에, 뭐 믿고 이렇게 얇은 책에 8000원이나 붙였나 싶은, 하드커버의 이쁜 소설집. 출판사가 ‘믿은’ 것은 더도 덜도 아니고 무.라.카.미.하.루.키.라는 이름 일곱글자였겠지. 

재미없었냐고? 이 책, 별로 재밌는 책도 아니고 제대로 된 소설도 아닌데, 그런데도 이 작은 소설집을 순식간에 넘기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역시 하루키야, 재미없다고 해도 하루키는 하루키, 어쨌든 빨리빨리 읽히는 것을 보면. 

내가 하루키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별로 극적이지도 않고 치밀하지도 않은 단편 몇개를 읽으면서 오히려 더 절절히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재작년에 하루키 단편집 두 권 읽고서 ‘재미없잖아 이게 무슨 단편선이야 연습용 메모들이지’ 했었는데, ‘회전목마의 데드히트’는 진짜로 ‘연습용 메모’들이다. 

그런데도 읽고 나니 썰렁하고 착잡한 기분이 드는 건 그야말로 하루키이기 때문. 하루키 소설의 일관된 테마인 ‘분리 불안’, 역시 그걸 또 건드리고 있잖아. ‘연습용이랍니다,’ 하면서 뻔뻔하게 속을 긁는 소설가.

재미라는 것은 수도꼭지를 틀어서 컵에다 물을 받아 “자, 여기 있어요” 하고 권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어떤 때 그것은 기우제의 춤까지도 필요로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 대부분은, 흘러갈 데를 찾지 못한 채 내 속에 쌓여 있다. 그것은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밤에 내린 눈처럼 조용히 쌓여만 가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공통되는 고충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맞춰 넣을 수 있는 인생이라는 운행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 시스템은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회전목마를 닮았다. 그저 정해진 장소를 정해진 속도로 순회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무데도 갈 수 없고, 내릴 수도 갈아탈 수도 없다. 누구를 따라잡을 수 없고, 누구를 추월할 수도 없다. 

하루키 스스로 ‘스케치’라고 이름붙인, 픽션도 넌픽션도 아니라는 단편들보다는 저자 서문에 해당되는 글이 더 재미있었다. 하루키가 말하는 하루키 문학론인 셈이다.



다른 그 어떤 사람의 독후감을 읽으면서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 있는데요. 

딸기님은, 공부만 많이 하는 부류와 
공부의 가치를 업신여기는 부류와의 그 절묘한 경계...에 서 계신 듯 해요.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아무리 공부의 가치를 부정해도,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미묘한 감성같은 걸 가진 사람.. 


(새삼스럽지만,,,) 넙죽...
  2006/01/20 
그러니깐... 
"공부 너, 별로 가치는 없지만 걍 해준다"라는 부류인 건가요 ^^
  2006/01/23 
아뇨, 그냥 다른 사람들 독후감은 머리만 아픈데 딸기님 꺼는 정말 책 읽고 싶어진다니까요. ㅎㅎ   2006/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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