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이탈로 칼비노, 나무 위의 남작

딸기21 2005. 9. 2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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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의 남작 Il Barone Rampante (1997) 

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 이현경 (옮긴이) | 민음사 | 2004-08-10




읽기도 전에, 마치 이 작품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이라고는 한두 편 밖에 읽지 못했고, 작가의 이력에 대해서도 별반 아는 바가 없는 주제에 말이다. 이 작품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었다기보다는, 많이 상상하고 기대했다는 편이 맞겠다. 

처음 칼비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습지만 소설이 아닌 조너선 스펜스의 역사책(‘칸의 제국’)을 통해서였다. 그 책에 인용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한 구절이 맘에 들어, 인터넷에서 꽤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다운받아 훑어봤었다. 

나의 생각과 달리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SF문학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게으른 독서습관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읽었다.

소설책을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이 필요한 경우가 꽤 있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던 셈이다. 어떤 소설일까? 이 작자, 꽤 마음에 드는데, 이런 종류의 판타지는 딱 내 취향인데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나올까. 이런 식의 문체는 잘만 풀려나오면 정말 매력 있단 말이다.

제목의 ‘남작’에서 보이듯 소설은 좀 오래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간적 지리적 배경은 18세기 이탈리아인데 읽어나가다 보면 중세에서 근세로, 근대로 아주 오랜 시간 흘러내려오는 것만 같다. 작가가 남미산(産) 이탈리아인이어서 그런지 마술적 사실주의 분위기가 묘하게 스며 있고, ‘백년 동안의 고독’을 보는 듯 기나긴 세월과 시대의 흐름을 축약해놓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역사소설이다. 귀족, 종교, 전쟁, 봉건제, 혁명. 엽기적인 사건들까지 낙천적으로 풀어놓는 작가의 글 솜씨는 탁월하고, 천연덕스럽다. 

또한 책은 판타지 소설이다. ‘판타지’ 소설의 정의를 학자들은 어떻게 내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기준은 하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등장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것이 말하는 것’. 그렇다면, 적어도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이 책은 판타지가 아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 책은 개연성 있는, 그럴듯한, 그러나 실제로는 존재하기 힘든, 그런 ‘상황’을 다룬 독특한 판타지 소설이다. 달팽이 요리를 먹기가 싫어서 어릴 적 나무 위로 올라간 뒤 평생을 나무 위에서 보낸 한 남자의 이야기라니, 거짓말 같으면서도 참 그럴 듯하다.

칼비노라는 작가는 이런 식으로 ‘상식’과 전쟁을 벌인다. ‘생각의 기존 질서’를 깨버리는 것이 이 작자의 목표가 아닌가 싶을 정도. ‘보이지 않는 도시’의 두 남자, ‘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흰 옷 입은 기사, ‘나무 위의 남작’의 이 귀족 남자. 그럴 듯한 이야기로 독자를 우롱하고 기만하고 즐겁게 하는 것이 칼비노의 재주다. 정돈돼 있는 듯하면서도 모순 그 자체인 이 세상에 대한 칼비노 식의 풍자. 그럼 이 책은 풍자소설이런가?

“예전에는 달랐다. 우리 형이 있었다. 나는 혼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벌써 형이 생각해 놓았을 거야.’ 그래서 나는 사는 일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다. 내게 세상이 변했음을 알려준 것은 오스트리아-러시아군의 도착도 피에몬테로의 합병도 새로운 세금이나 내가 아는 다른 그 어떤 일도 아니었다. 바로 창문을 열고 저 나무 위에 균형 있게 앉아 있는 형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무위의 디 론도 남작은 귀족제가 수명을 다해가는 시대의 귀족이고, 자연이 인간의 도끼질에 날아가는 시절에 자연을 사랑하는 인간이고, 반동의 소용돌이에 계몽과 자유의 이상이 강타당하는 시기에 혁명을 선동하는 민중의 수호신이다. 작가 자신이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설정했다는 이 기묘한 인물은 젊은 날의 꿈처럼 빠져나가는 이상과 자유로운 정신, 이성인 동시에 낭만과 희망, 자연, 고향의 상징이다.

책에서 작가가 상당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바로 나무에 대한 묘사이다. 감탕나무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등등, 나무 자체와 숲의 모습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작가는 말미에 ‘자연’에 대한 복고풍 감수성을 담은 문장을 넣어놓았다.

“하늘은 텅 비어있다. 초록의 지붕 밑에서 사는 데 익숙한 우리 옴브로사의 노인들은 그런 하늘을 보면 눈이 아프다. 우리 형이 사라진 후에, 또는 인간들이 미처 도끼를 들고 날뛰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무가 견뎌날 수 없게 되었다고들 한다. ... 옴브로사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텅 빈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옴브로사가 정말로 존재했는지 자문해 본다. 이리저리 갈라진 나뭇가지, 잎맥이 섬세하고 끝도 없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나뭇잎들은 불규칙적으로 조각조각 섬광처럼 보일 뿐인 하늘 위에 펼쳐졌는데, 이는 아마도 우리 형이 물까치같이 가벼운 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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