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딸기21 2005. 9. 2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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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Damals War Es Friedrich (1980)

한스 페터 리히터 (지은이) | 배정희 (옮긴이) | 보물창고 | 2005-08-25 



알라딘의 어느 분 서재에 들렀다가 이 책이 새로 나온 걸 알게 됐다. 댓글 달다가, 혼자 괜히 감격해서 이렇게 주절거린다.


감격해버렸다. 이렇게 반가울데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 내 머릿속 책꽂이의 어느 한부분을 아프게 누르고 있는 책 중의 하나다. 벌써 몇년 째 잊고 있었지만, 이렇게 제목을 들으니 다시 머리 속에 멍이 드는 듯한, 종이에 잉크가 번져나가듯 그렇게 멍울 같은 것이 퍼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어릴 적 동서출판사에서 나왔던 에이브 문고 중에 저 책이 있었다. 에이브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당연한 얘기인 것 같지만, 이 시리즈는 그다지 널리 유행하지도 않았고, 아마 그다지 많이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이 꽤 비쌌었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을 모아놓은 거였다. 


국민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일종의 아동소설 혹은 넌픽션들이었는데, 전래동화들만 울궈먹던 내 어릴적 울나라 출판계에서 아동서적으로 이런 시리즈가 나왔다는 것은 놀라울 지경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 시리즈가, 시대를 너무 앞서 출간됐었다고 믿고 있다.


아무튼 그 중의 한 권이 저 책이었다. 지금 저 책의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영엄마님이 소개해놓으신 걸 보니 '그래, 이런 내용이었지' 싶은 정도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아주 담담하게, 어느날 갑자기 다가와버린 체계적인 폭력과 일상의 공포를, 한 아이가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자의 죽음'이나 '안네의 일기' 같은 책들을 읽을 때 내 눈에는 어떤 종류의 낭만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끼어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 낭만의 안개 따윈 없었다. 책은 내게 나찌즘(내가 겪어보지도 않은!)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심어줬었다. 책은 인간의 본성, 인간의 무언가가 사회/국가 전체를 미치게/혹은 미친 척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린 내게 막연히 알려줬던 것 같다.


지금 내 에이브는 머나먼 시골집에 가 있다. 책이 몹시 망가졌을까 걱정된다. 조만간 불러들여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