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에 부동산 붐이 불고 있다. 고유가 덕분이다.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온 덕에 사우디 전역에서 개발 열기가 일어나다 못해, 이슬람 본향(本鄕)인 성지 메카의 예언자 무함마드(마호메트) 생가마저 팔려나갈 지경이라고 알자지라 방송이 최근 전했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속셈은 간단하다. 중동 산유국들이 고유가로 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주변국들에서 찾아오는 순례객들도 더 많아질 것이고, 따라서 메카의 숙박시설과 편의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개발계획은 100억 리얄(약 2조800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이는 `자발 오마르 프로젝트'. 카바(무슬림의 성소인 검은 대리석)가 있는 메카의 대(大)모스크 주변에 23만㎡ 면적에 걸쳐 7년간 호텔과 아파트, 쇼핑몰 등을 짓는다는 프로젝트다. 이 공사가 진행되면 무함마드 생가를 비롯한 여러 유적들이 사라지게 된다.
사우디 이슬람의 주류는 수니파 중에서도 근본주의 성향인 와하비즘이다. 와하비즘을 신봉하는 와하비파(派)는 왕정을 이끄는 사우드 가문과 함께 사우디의 양대 세력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슬람 유적지 파괴에 앞장서는 것이 바로 와하비들이다. 이들은 무함마드와 관련된 유물들을 순례하는 것이 자칫 이슬람에서 금지된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유적 보호에 힘쓰지 않고 방치해왔다. 이들은 전세계 무슬림의 관심은 카바에만 집중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지난 1994년 일군의 와하비들은 이슬람 유적들이 다신교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해하기 힘든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개발 열풍에 대해 이슬람 학자들은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슬람 건축 전문가인 사미 앙가위는 "무함마드 생가는 단지 예언자의 집일 뿐 아니라 1400년전 이슬람 초창기의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이기도 하다"며 "개발업자들이 역사를 불도저로 밀어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앙가위는 지난 50년간 사우디의 두 성지 메카와 메디나에서 사라져간 주요 이슬람 건축물 300개가 넘는다고 지적한다.
사우디 내에서 국왕을 부르는 공식 호칭은 `두 성지(메카와 메디나)의 수호자 (Custodian of the Two Holy Mosques)'인데, 이런 표현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쪽에선 오사마 빈라덴 같은 인물이 `이슬람 성법(聖法)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인권 탄압 비난에 아랑곳 않고 이슬람 교리만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마구잡이 개발로 성지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는 것. 영국의 이슬람미술 전문가 제프리 킹은 "중동의 다른 어느 지역에서보다 사우디에서 이슬람 유적들이 가장 많이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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