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교외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몬수르의 알사아 레스토랑에 들렀다. vm라이드 치킨과 햄버거 같은 스낵을 함께 파는 간이 레스토랑 겸 카페인데 세련되고 서구적인 분위기여서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몬수르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인데, 알 사아의 카페 안에서도 데이트하는 남녀들이 여러쌍 보였다.
어떤 이가 <바그다드 카페>라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라크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우리식과는 전혀 다르다. 차(茶)도 역시 마시는 방법이 다르다. 투르키쉬(Turkish coffee)라고 부르는 커피는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탄 것인데 독특한 향내가 나고, 가루같은 것이 녹지 않고 씹힌다. 특히 작고 좁은 커피잔의 바닥에는 그 가루가 진흙처럼 가라앉아 있어서, 잘 모르고 끝까지 다 마시려 하면 목구멍이 좀 곤란해진다.
Chay라고 부르는 차는 아주 맘에 들었다. 이라크에서 가장 맘에 든 것이 차이라고 해도 되려나. 흔한 실론티 같은 홍차를 아주 진하게 타는데, 희한하게도 위스키잔보다 조금 큰 유리잔에 차를 따른다. 이 진한 홍차에 백설탕을 한 숟가락 넣으면 바닥에 설탕이 덜 녹아 괴어있는 것이 보인다. 달게 마시려면 다 저어 먹고, 덜 달게 마시려면 좀 덜 저으면 된다. 진하고 달콤한 차는, 더운 날씨에 지쳐 있을 때 피로회복에 좋은 것 같았다.
큰 모스크 앞에는 보통 시장이 있는데, 바그다드 시내에 있는 카디미야의 황금돔사원 앞에도 시장이 있었다. 지저분하고 허름한 시장골목에도 찻집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찻집은 아니고 노천에서 할아버지(왼쪽 두번째)가 차를 팔고 있었는데 차 한잔에 50디나르(1 달러=2000 이라크디나르)이니 정말 싸다. 값이 쌀 만도 하다. 양은으로 바람막이를 쳐놓고 숯불을 피워 차를 끓이고, 제대로 씻지도 않았을 것이 확실한 유리잔에 차를 따라준다.
카디미야 사원을 구경하고 나서 시장통을 들여다보다가 차를 마시고 싶다고 했더니 가이드를 빙자해 나를 따라다니던 정보부원(맨 왼쪽)이 주섬주섬 250디나르 지폐를 꺼내 차를 주문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주변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더니 신기해하면서 차 마시는 장면을 연출해주어 저 사진이 나왔다. 할아버지는 찻집 주인이라기보다 꼭 선생님같은 인상이었는데, 여기서 마신 차는 정말정말 맛있었다.
요르단에서는 <나(흐)나(흐)>라는 허브를 넣은 차를 마셨는데, 박하맛 같은 것이 섞여서 이 차를 마시면 꼭 껌을 씹었을 때 비슷한 느낌이 난다.
아랍인들은 차를 많이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카페문화가 먼저 시작된 것은 아랍을 다스렸던 투르크 시절의 일이었고, 오스만의 카페문화가 영국이나 유럽 등지로 건너갔다고 봐도 된다.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도 좁다란 방안에 큰 식수통같은 것을 놓고 차를 졸졸 따라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란 터키 뿐만 아니라 아랍인들도 정말 차를 많이 마신다.
달리는 밴 안에서 차를 마셨던 얘기를 했었는데, 맘만 먹으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차를 마실 수 있다. 어디에서건 차를 달라면 주고, 잠시라도 짬이 나면 차를 마신다. 나는 바그다드에서 암만으로 나가는 길에 렌트카 주차장에서도 차를 달라고 해서 마셨고, 국경검문소에서는 직접 사무실 옆 싱크대에 가서 차를 꺼내다 마셨다.
말 나온 김에 음식 얘기도 하자면, 사실 바그다드에서 나는 음식을 거의 못 먹었다. 워낙 양식 같은 남의 요리 잘 못 먹는데, 특히 양고기는 냄새가 너무 심해서 통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체질적으로 긴장하면 입맛 없어지는데 날씨까지 40도를 넘나들다보니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요르단에 처음 도착했을 때 먹었던 양고기 케밥은 그래도 맛있었는데 이라크는 경제사정이 어렵고 재료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맛이 없었다.
바그다드에서 먹었던 것 중 제일 맛있었던 것은 <밧데이흐(불어의 r 발음)>라고 부르는 일종의 멜론. 수박과 호박을 합친 모양에 과육은 멜론 맛이 나는, 물 많고 시원한 과일이었다. 그 외에는 호텔 식당에서 부스러지는 빵과 평범한 닭튀김, 냄새나는 양고기에 투르키쉬 커피를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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