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시아파 사원 방문기 (2)

딸기21 2002. 10. 17. 15:03
바로 그 후세인의 유골을 안장한 모스크(사진)에 갔더니 이란에서 온 순례객 여성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기도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란에서 왔다, 저들은 파키스탄인들이다라고 구분해 설명해주는 유씨프에게 "내 눈에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데 어떻게 국적을 아느냐"고 했더니, 자기들은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당신들은 나에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고 묻지만 우리끼리는 서로 구분한다"고 말해줬다. 

유씨프의 설명으로는 흰 옷에 흰 모자를 쓴 사람들은 파키스탄인들이고, 이라크 사람들과 비슷한 옷차림에 단체로 돌아다니며 무슨 책자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이들은 이란인들이란다.

하지를 다녀왔냐고 유씨프에게 물어봤다. 무슬림이라면 일생에 한번은 해야 하는 의무사항인데 이라크에서는 45세가 넘어야만 하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메카까지 가는 순례 역시 <외국 여행>에 해당되기 때문에 통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유씨프는 내가 무슬림이라는 얘기를 정말로 믿은 모양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멜과 달리, 유씨프는 나이가 많았는데도 검은 염소같이 생겼고 더 쑥스러워했다. 그는 서툰 영어로 내게 한국의 무슬림 현황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는 몇명의 무슬림이 있는가?"
"음...100명 있다"(당황...)
"아, 10만명(100 thousand)이 있구나"
"으으...아니, 그냥 100"(계속 당황)
"아니 그렇게나 조금? 어디서 예배를 보나?"
"으으으...서울에 모스크가 딱 한개 있다. (서둘러 덧붙이며) 그런데 서울의 모스크는 아주 작고, 여기 모스크가 최고다!"
"꾸란을 읽었는가."
"아랍어를 몰라서, 한국어로 읽고 있다"(거짓말)

모스크의 흰 대리석 바닥에 앉아(모스크는 실내 뿐 아니라 마당도 모두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크고 까만 눈으로 외국인 <순례객>을 올려다보는 가난한 소녀들. 그들도 예뻤고, 바그다드로 돌아오는 길에 본 유프라테스와 갈대밭도 아주 아름다왔다.

'미국보다 더 무서운 것은 종교 갈등'

바그다드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공격위협에 대해 예상외로 담담한 반응들을 보이고 있었다. 요르단 출신으로 이라크 여자와 결혼해 바그다드에 살고 있는 압둘 카림(42)은 "전쟁이 난다 해도 피난은 가지 않을 것"이라며 가족들과 함께 계속 바그다드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난을 갈래야 갈 곳도 없고 연일 듣는 전쟁 이야기에 이골이 난 탓도 있겠지만 미국의 공습이 정해진 목표물, 군사·통신시설에 국한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정작 이라크인들, 바그다드를 비롯한 중부 이라크의 순니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의 공격 자체가 아니라 전쟁과 함께 벌어질 남부 시아파의 공격인 듯했다. 후세인 정권의 기반인 순니파들이 시아파를 겁내는 것은 이미 지난 91년 걸프전 때 시아 반란군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시아파들은 후세인 정권에 반기를 들고 디와니야 등 남부 도시를 일부 점령, 집권 바트당 간부들을 처형하고 순니파 부녀자에 대한 강간과 약탈을 자행했었다. 


후세인 정권은 즉각 반격에 나서 반군들이 숨어있는 나자프와 케르발라의 사원들을 탱크로 공격, 무력진압했다. 시아파 반(反) 후세인 세력은 이후 게릴라로 변해 현재까지도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뒤에는 시아파의 본산인 이란의 지원이 있다.

후세인은 전쟁 뒤 시아파를 달래기 위해 남부 출신인 사문 하마디를 한때 총리로 임명하기도 했고, '제3의 강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대규모 개발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시아파들은 후세인 정권이 표면적인 '화합' 주장과는 정반대로 비밀리에 시아파 지도자들을 암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