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4일 저녁 바그다드 시내 인민경기장에서는 사담 후세인 현대통령을 지지하는 시민 축제가 열렸다. 이라크 프로축구리그 1,2위 팀간의 친선경기에 앞선 축하행사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는 사실상 축구경기가 아니라 후세인 우상화를 위한 정치집회였다.
타하 야신 라마단 부통령까지 참석한 이날 행사는 군악대의 행진과 이라크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공연, 패러글라이딩 시범 등으로 구성된 일종의 '집체극'이었다. 이라크 올림픽위원회의 하레스 아바위 위원은 "국민들을 위해 무료로 축구경기 관람 행사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라크에서는 축구가 이날처럼 종종 정치선전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체육분야는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가 주관하는 영역으로, 지난 6월 월드컵 기간에는 국영방송 3개 채널에서 거의 전경기를 방영했었다고 한다. 축구장은 전쟁기념관, 오폭기념관, 병원, 학교와 함께 정해진 체제 선전 코스에 들어가 있다.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후세인 찬양으로 일관했다. 관중석 중앙에는 후세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렸고, 경기장 스크린에도 그의 얼굴만 보였다. 스탠드에는 '동원된 관중'들이 붉은색, 흰색, 검은색 줄이 쳐진 이라크 국기와 후세인의 초상화를 들고 연신 구호를 외쳤다.
"나암 나암 랄카에드 사담 후세인(Yes, yes for the leader Saddam Hussein)"이 반복되는 찬양가가 울려퍼지고, 경기장에는 각 지역 민속의상을 입은 무용단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제일 앞에 내세운 것은 북부의 쿠르드족이다. 북부 3개주에서 유엔 관리하에 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이라크 내의 대표적인 반후세인 세력이다. 그런 쿠르드족을 앞세워 이라크인들이 '화합'하고 있음을 애써 선전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경기장에서 만난 여고생 지나는 전통적인 머리덮개 히자브 대신 청바지에 선글라스, 귀고리를 한 신세대였다. 후세인의 얼굴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지나에게 "대통령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순간 학생들을 인솔해온 여교사가 "나는 그를 사랑한다"고 대답하라고 영어로 일러주었고, 지나의 대답은 더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라크의 '국민가수' 쯤에 해당될 세이브 아브라힘이 나와 역시 후세인 찬가를 불렀고, 패러글라이딩 시범에 이어 시리아의 '신세대 스타' 조르지아 수브가 무대에 나왔다. 젊은이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열광하며 후세인 초상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행사는 우상화로 시작해서 우상화로 끝났지만, 왜곡된 형태로나마 이라크 전통무용과 대중음악을 접해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조르지아 수브의 노래는 락음악 비슷하면서, 팝송과 큰 차이가 없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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