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함무라비는 없다

딸기21 2002. 10. 1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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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었던 바빌론, 그 바빌론에 도착했다. 타리크도 길을 모르는지 물어물어 찾아갔다. 말로만 듣던 이슈타르의 문(사진). 파랗게 칠한 벽돌에 사자를 돋을새김하고 노랗게 칠한 그 문은 물론 '가짜'다. 진짜 이슈타르의 문은 독일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여기는 바빌론이 아닌가. 고대 수메르의 수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네부차드네사르왕의 공중정원이 있는 곳. 대추야자나무가 있는 정원을 지나 진흙벽돌로 만들어진 성곽으로 올라갔다. 사담 후세인이 옛날의 공중정원을 80년대에 복원해놓았다.


복원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황량한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벽돌은 진흙으로 만들었는데 굽지 않고 그냥 햇볕에 말린 것 같았다.

날은 몹시 더웠다. 낮기온이 40℃까지 올라가는 푹푹 찌는 날씨였다. 다행히 습기가 많지 않아서 더위를 많이 안 타는 나로서는 견딜만한 정도이기는 했지만 그늘이 없어서인지 바람 기운을 느낄 곳이 없었다. 


땀을 식힐겸 유적지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내놓을만한 유물은 모두 유럽인들이 가져가 버려서 볼거리가 별로 없었다. 성벽의 벽화를 재현해놓은 것이랑 조각상 몇개가 있었고, 바빌론의 성을 재구성해놓은 모형이 있었다.

이 곳은 과거에 얼마나 영화로웠던 곳이었길래 그 옛날에 저런 큰 성을 만들었을까. 만일 저 성이 진짜로 이 곳에 서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 공간에 위치해 있다면, '신라 천년의 고도'니 말로만 '반만년 역사'이니 하는 한국의 역사가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4000년전의 함무라비왕은 '강자는 약자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라는 일종의 정의율(正義律)을 최초로 성문화한 인물이다.


강자는 약자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대단한 진리를 법으로 세운 것이 수천년전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인데, 지금 이라크는 정반대로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생생한 현장이 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이라크를, 사담 후세인은 국민들을 공격하고 내리누른다.

요즘 이라크의 사정을 말해주듯 나를 빼놓고는 관광객 하나 없이 쓸쓸한 바빌론의 성곽 저편에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타리크에게 그리로 가자고 했다. 안내원에게 무어라고 물어보더니 안된다고 한다. 


"저 곳은 누구의 집이니 갈 수 없다"
"들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근처에 차를 타고 가서 구경만 하자는 것이다"


고집을 부리는 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타리크. 누구의 집이냐고 물으니 '사담의 집'이라고 했다. 뒤에 현지 한국인들에게 물으니 사실이라고 했다. 바빌론의 유적을 위압적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 건물이 바로 미국에 눈엣가시가 박힌 사담 후세인의 이른바 '대통령궁'이었다.

사실 근래 들어 복원된 이라크의 고대 유적들 대부분이 사담의 치적을 과시하기 위한 이중적인 상징조작의 도구다. 유적을 제대로 발굴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손대지 말고 그냥 놔두는 것이 후대를 위한 일일텐데. 

바빌론의 가짜 성곽 아래에는 수천년의 세월 동안 이리저리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묻힌 유적의 층들이 쌓여 있다고 했다. 그 위에 사담은 네부차드네사르가 아닌 자신의 성곽을 세웠다. 군데군데 벽돌의 돋을새김에는 사담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했는데 아랍어를 몰라 확인하지는 못했다. 성곽 바깥 부분에도 모래층 사이로 유적의 흔적이 보이는데 또 무슨 건물을 짓는다며 포크레인들이 마른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함무라비와 관련된 유적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돌아다녀봤지만 허사였다.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진 곳은 여기이지만 법령이 쓰여진 돌판이 발견된 것은 오늘날의 이란 땅에서였다. 페르샤제국이 이 지역을 제패했던 시절에 가져갔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그 돌판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고 들었다. 로제타석과 마찬가지로 기구한 운명의 돌인 셈이다.


멀찍이 방공호들이 보였고, 사막 가운데에 관개공사가 된 지역에는 수영장처럼 깨끗한 물이 낮은 수로로 흘러서 딴세상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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