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사담의 나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딸기21 2002. 10. 10. 14:16
728x90

"사담 후세인의 나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바그다드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수막. 실제 그 말대로, 이라크는 후세인의 나라였다. 바그다드는 '눈만 돌리면' 후세인의 얼굴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후세인의 동상과 초상으로 덮여 있었다. 큰 건물의 벽면에는 어김없이 초대형 후세인 초상화가 걸려 있고 관공서 담장, 호텔의 로비, 시내 중심가의 광장 할 것 없이 모든 곳에 그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 특히 15일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거리에는 관공서에서 나눠준 후세인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승합차들은 앞뒤로 '후세인 만세' 등이 쓰인 플래카드를 달고 거리를 달렸다.

각종 기념일이면 혁명광장에서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시내 중심에는 높이 310m의 '사담 타워'가 도시를 굽어보고 있는 곳, 바그다드. 이 곳 사람들은 후세인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우리는 대통령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는 적에 맞서 싸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30년 넘게 우리를 이끌어왔다". 바그다드에 들어오는 초입에서 만난 택시기사 네줌은 후세인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예찬을 펼쳤다. convocation ministry 직원인 잘랄 야히야의 말은 더욱 강렬하다. "사담은 우리의 빅 브라더이고, 우리의 아버지이다".


사둔광장에서 만난 압둘 자라트는 20년 이상 한 사람이 장기집권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그동안 몇차례나 은퇴해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국민들이 그를 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영 INA통신 기자인 이자멜 케난은 "그는 언제나 서민들과 함께 한다.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그와 함께 있었다. 후세인은 아주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대통령이자 혁명평의회 의장, 집권 바트당 총재, 군 최고사령관, 총리까지 독식하는 무소불위의 독재자. 실제로 후세인은 이라크의 빅브라더인 것 같았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은 2002년 이라크에서는 소설이 아닌 현실이었다. 아마도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을 개인숭배의 절정이 아닐까. 이라크를 6번째 방문한다는 일본 도쿄신문의 한 기자는 "이라크인들이 후세인에 대해 말할 때에는 내용의 진실성을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이라크인들은 "국민들은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빤한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국가의 탄압 때문에 '진심'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인터뷰에 응한 많은 이들은 이미 철저히 세뇌되어 스스로 후세인의 영웅성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졌다. 미국의 거센 압력은 후세인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듯했다.

전쟁기념관의 어린이들

"나암 나암 알카예트 알 만수르 사담 후세인(Yes, yes for the leader Saddam Hussein)"


이라크 '어린이의 날'인 13일 바그다드 시내 빌라트 엘 슈하다의 전쟁기념관에는 도열한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원래 초등학교 건물이었던 이 곳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란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받아 어린이 수백명이 숨진 뒤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는' 전쟁기념관을 재건됐지만 실제로는 어린 아이들을 후세인 우상화의 도구로 만드는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매년 폭격일이 되면 되풀이되는 추모행사에 참관하기 위해 각료들이 기념관에 들르자 군복 차림을 입은 소년들을 비롯, 수백명의 어린이들이 "나암 나암 사담 후세인"을 외치며 국기를 흔들고 박수를 쳤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자 후세인이 어린이들과 찍은 사진들과 함께 걸프전 이후 태어난 기형아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관에서 만난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들어온 후세인에 대한 찬양이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무리지어 떠들다가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더 크게 구호를 외치며 줄을 맞추는 어린 소녀들의 모습은 '세뇌교육'의 효과를 여실히 보여줬다. 12살 소년 아만은 이름을 묻자 곧바로 "우리나라는 아름다워요"라고 외쳤다.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턱턱 막혔고, 눈물이 나왔다. 미국이 이라크의 '내정'에 간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리고 사담 후세인이 물러난 뒤 이라크에 진정한 '민주정권'이 들어설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사담의 독재체제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서울에 돌아오니 우리 부장이 내게 "서울 있을 때에는 반미주의자이더니 이라크 가서 반후세인주의로 변한 것 같더라"고 말을 했는데, 앞서 말한 '별개의 문제들'을 논외로 한다면 그 말은 맞는 말이다).


후세인정권의 우상화 작업은 이미 20년 가까이 진행됐지만 최근 더욱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이라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라크의 언론들이 후세인을 국민들의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하는 등 상징조작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