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의 암만에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까지는 총 950km. 거의 대부분 사막으로 이뤄진 이 길을, GMC밴을 렌트해 달려가기로 했다.
밴의 운전사는 이라크 국경이 가까워오자 가게에 들러 바그다드의 가족에게 가져갈 물건들을 잔뜩 사들였다. 콜라와 초콜릿 따위를 하나 가득 실은 차는 요르단-이라크의 접경인 케라메에 도착했다.
허름한 단층건물로 된 입국심사장에 들어서 맨 처음 부닥친 것은 에이즈 검사였다. 에이즈를 '동성애자들의 죄악의 결과물'로 간주하는 이슬람권에서도 유독 이라크는 입국시 에이즈 검사를 위한 채혈을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다. (지난해 세계에이즈 총회에서 이슬람권은 총회결의안에 동성애가 지탄받아야 할 도덕적 죄악임을 명시하자고 주장했었다. 북유럽 등의 거센 반발로 결이안에 그런 문구가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슬람권이 동성애-그리고 에이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외국인은 입국 전 1인당 200달러를 내고 피를 뽑는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담당 의사에게 15달러를 건네자 채혈 검사는 바로 면제됐다.
뒤이은 관문은 세관 통과. 입국심사장 마당에 있는 대리석 판넬 위에 짐을 얹어놓고 전자제품 목록을 적어내는 것이 통관절차다. 요르단의 소식통에게서 귀띔을 받아 한국에서 가져온 이동전화는 암만의 호텔에 맡겨두고 온 상태였다. 이라크는 자체적인 이동전화 생산능력이 없을뿐더러, '군사용으로 전용될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동전화 반입이 유엔에 의해 금지돼 있다. 노트북 컴퓨터와 디스크 드라이버, 어댑터 등의 목록을 적어내는 것으로 짐 검사는 예상보다 쉽게 끝났다. 그러나 서류 하나가 넘어갈 때마다 지체되는 시간이 길어, 입국수속을 완료하는데에는 2시간 이상 걸렸다.
육로를 통한 외국인들의 입국이 자유롭지 않은 탓에 국경지대에는 일종의 '입국 암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출입국관리와 세관, 운수업자들 사이에 커넥션이 형성돼 외국인 관광객들을 들여보내주는 대가로 '급행료'를 받는 것이 시스템처럼 굳어져 있었다.
비자를 발급받는데에는 통상 두달이 걸린다. 특히 이스라엘 비자나 입국기록이 있을 경우에는 비자를 받을 수 없다. 비자 발급에서 국경 통과까지, 매 단계마다 관리들과의 '협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아랍권의 외국인이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바그다드까지 들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국경을 통과한 밴은 다시 사막으로 들어섰다. 몇시간째 계속되던 꾸란의 독경소리는 어느새 아랍여자의 목소리로 바뀌더니 한국의 뽕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요르단을 방문했던 한국인이 건네준 것이라고 운전사 압둘 카림은 설명했다. 갑자기 관광버스 분위기. 사막의 밴에서 <소양강처녀>를 부르며 여행을 하게 되다니.
바그다드-암만을 오가는 밴은 현대의 캐러밴이다. 요르단 내에서 왕복 2차선의 구불구불한 도로였던 길은 이라크로 들어서면서부터 왕복 6차선의 탄탄대로로 바뀌었다. 차는 시속 150-160km로 달리고 있는데, 압둘 카림은 천하태평도 그런 천하태평이 없다. 달리는 와중에 차(아랍에서는 챠이)를 마시겠느냐고 묻더니, 아예 운전대를 놓고 챠이를 탄다. 설탕을 듬뿍 넣은 진한 챠이. 땅콩도 꺼내놓고, 아예 <달리는 카페>다.
사막 가운데 있는 미오세티라는 작은 마을에 내렸다. 화장실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눈치빠른 동행이 주의를 준다. 아니나다를까, 유료 화장실이다. 꾀죄죄한 꼬맹이가 화장실 앞에서 돈을 받다 말고 내 카메라를 보더니 한장 찍어달란다. 뒤에 알게된 일이지만, 왜 그렇게 사진 찍어달라는 이가 많은지. 미오세티의 가게에서는 중국산 잡화와 포케몬 인형 따위를 팔고 있었다. 나는 요르단에서 구입한 히자브(머리쓰개)를 쓰고 있었고, 낯선 이방인의 히자브를 본 아랍인들은 몹시 재미있어하면서도 정작 나와 함께 사진을 찍자니 도망을 쳤다. 압둘 카림은 운전을 하다 말고 가게 앞에 자리를 펴더니 메카를 향해 기도를 했다.
날이 저물었고, 해가 졌다. <완전한 어둠>이라고 표현했던, 그 어둠이 사막을 덮었다. 바그다드에 도착해서 티그리스 강변의 레스토랑에 들렀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는 그리스인들이 부르던 이름을 유럽식으로 받은 것이다. 두 강을 갖고 있는 이 나라의 사람들은 다질라, 푸라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며칠 뒤에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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