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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국민투표 참관기

딸기21 2002. 10. 15.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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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7년 임기 연장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된 15일 오전 11시. 바그다드 시내 알 자마에 설치된 투표소에서는 공무원들의 독려를 받은 시민들의 투표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시민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투표함에 용지를 집어넣었고, 옆에서는 각국에서 온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투표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일당독재식 투표'로 진행된 이날 투표장의 모습은 후세인 정권이 주장해온 '이라크 민주주의'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투표장 밖에서는 '나암 나암 사담 후세인(후세인에게 찬성표를)', '사담은 우리의 유일한 선택' 따위의 구호를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라디오와 TV에서는 하루종일 후세인 찬가를 틀고 있었다. 전통 머리덮개 '아바'를 쓰고 투표를 하러 온 여성 유권자 순두스에게 "현재의 경제상황에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전화교환원 일을 하면서 4만 디나르(약 2만5000원)의 월급을 받는다는 순두스는 "월급이 적다"고 귓속말을 하더니 선거관리요원과 눈길이 마주치자 "우리는 사담을 사랑한다"며 금새 말을 바꿨다.

저녁 8시에 공식 종료되는 투표가 끝나가는 오후 6시부터 바그다드 시내 만수르의 상점가에는 후세인 지지자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트럼펫과 북을 들고 춤을 추며 대통령의 재선을 미리 축하했다. 후세인 깃발을 내건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퍼레이드를 벌였으며 혁명광장에는 '축하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라크의 정권을 바꾸겠다는 미국의 계획을 놓고 한 국가의 내부문제에 '외세'가 개입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각국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날 투표장에서 드러난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미국의 이라크 공격방침을 줄곧 욕해왔던 나는 '이라크 국민 스스로의 개혁'은 이대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정반대의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중동에서 보기 드물게 큰 강들이 흐르고 석유가 넘쳐나는 땅, 중앙의 초원과 북부산지의 풍요로운 지대에서는 과실이 무르익고 남부의 항구를 통해 세계와 이어질 수 있는 땅.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이같은 천혜의 축복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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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참여, 100% 찬성

사담은 결국 100% 참여, 100% 찬성이라는 엽기적인 지지율로 7년 임기의 대통령에 재선됐다. 정말 엽기적인 나라다. 어린 시절 '공산당 투표' 얘기를 들을 때에도, '찬성률 100%'는 아니라지 않았는가. 해도 너무한 이 투표결과를 놓고 이자트 이브라힘 혁명평의회 부의장이 기자회견에서 재미난(사실은 슬픈) 얘기를 했다. "100% 찬성이 말이 되는가"라는 서방 기자의 질문에 그는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답했는데, 이 말은 한동안 소수의 취재진들 사이에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개표작업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이미 '바벨' 등 이라크 언론들은 '100% 찬성률'을 보도하고 있었다. 이라크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바벨'은 사담의 장남 우다이가 운영하는 바벨그룹의 것인데, 말하자면 이라크 내 '여론조작'의 선두주자 격이다.

■ 이라크는 어떤 나라

아라비아반도 바로 위쪽에 위치한 이라크는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 터키로 둘러싸여 있으며 면적은 약 43.7만㎢로 한반도의 2배 정도다. 수도는 바그다드. 인구는 2002년7월 기준 2400만명 정도이고 아랍계(80%)와 쿠르드계(15%), 기타 투르크멘계와 앗시리아계 등 소수민족(5%)으로 구성돼 있다. 아랍어와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북부에는 91년부터 유엔 관리하에 쿠르드족이 자치지역을 구성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300m 이하의 저지대이고, 고지대는 전국토의 15% 정도 밖에 안 된다. 지형적으로는 터키에서 발원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중부와 남동부에 충적평원지대가 형성돼 있고, 북부와 동부에 고원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북쪽 알 자지라 고원지대에는 신자르 산맥이 있지만 남부와 서부는 전체가 광대한 사막지대다. 서부 와디야 사막을 비롯해 사막이 국토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유역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약 4000년전 발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 수메르, 우르 등의 왕국을 발전시켰으며 그리스 등 서방 문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10세기 이후로는 완전히 이슬람화 되었으며 현재도 인구의 97%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무슬림이다. 종파적으로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기반인 순니 무슬림이 32-37%, 시아 무슬림이 60-65%이며 기독교 등 소수종교가 3% 정도를 차지한다.

이라크를 대표하는 것은 석유 등 에너지 자원. 석유매장량이 1250억 배럴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이며 천연가스도 막대한 양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이라크전쟁(1980-88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2위의 석유수출국이었다. 북부의 키르쿠크와 모술, 남부의 바스라 일대는 대표적인 유전지대다. 집권 바트당의 사회주의 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산업이 국유화되어 있고, 배급경제가 정착돼 있다. 1970년대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경제는 매우 피폐해진 상태다.

한국과의 관계는 81년 바그다드에 한국 총영사관이 설치되면서 시작됐고 89년 대사급 외교관계가 수립됐다. 그러나 이듬해 쿠웨이트전과 뒤이은 91년의 걸프전에서 한국이 미국을 지지하면서 관계가 악화돼, 94년에는 주한 이라크대사관이 잠정폐쇄됐다. 북한과 이라크는 68년 수교했으나 이란-이라크전 때 북한이 이란을 지원하면서 80년 단교됐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77년 한국 건설업체가 이라크에 진출해 대형 공사를 도맡음으로써 이라크 내에서 상당한 명성을 쌓았으나 역시 걸프전 이후 대부분 맥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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