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두 번이나 전쟁을 했는데, 영국 런던 테러는 `전쟁'으로는 테러범들을 막아낼 수 없음을 다시 입증해보였죠.
바이러스처럼 곳곳에 스며있는 테러조직들과의 싸움은 결국 정보전이 될 수밖에 없지만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들이 정보전쟁에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주요8개국(G8) 정상회담과 올림픽 유치 열기 등으로 런던의 보안이 `방치'돼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미국에 이어 영국에서도 정보기관 책임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는 군요.
물먹은 정보기관들
2001년 9.11 테러 직전 미 중앙정보국(CIA)은 알카에다가 곧 테러를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지만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이런 걸 전문용어로 ‘뭉개고 있었다’고 하지요).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정보처리 실패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의회 조사위원회가 설치되고 청문회까지 열렸는데요. CIA랑, 미 국방부 정보국(DIA)는 더 말할 필요 없는 세계최대 정보조직들인데 망신살이 뻗쳤지요.
영국의 비밀정보위원회(SIS)와 군사정보부 제6부(SSB)는 각기 국내정보와 국외정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들로 보통 MI5와 MI6라 통칭됩니다(실체가 불분명한데다가 이름도 많아서, 우리나라에선 그냥 ‘국내정보국’ ‘국외정보국’ 이렇게 표기하기도 합니다).
두 기관의 수장은 이름이 공개되지 않고 각각 알파벳 `K'와 `C'로만 불립니다. MI6는 `007' 영화 속 제임스 본드가 소속됐던 기관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영국 정부는 9.11 뒤에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면서 정보통신본부(GCHQ), MI5, MI6를 총괄하는 ‘합동테러분석센터’를 신설하고 예산도 대폭 늘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한 채 이번에 테러집단에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때 세계 최강의 정보력을 갖고 있는(즉 세계 최고로 나쁜 짓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스라엘의 모사드(국외정보)와 신베트(국내정보)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정보를 입수하는데 연속 실패, 명성이 빛을 바랬습니다.
변신에 실패한 공룡들
20세기를 주름잡던 거대기업들이 변화와 다양성의 세기를 맞아 변신에 실패해 잇달아 추락하는 것처럼, 정보기관들도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락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이들 정보기관들이 세계 최대 정보조직인 것은 틀림없지만 국가간 전쟁의 와중에 태어나(MI5와 MI6) 냉전을 토양으로 자라난(CIA) 탓에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냉전시절 서방 정보기관의 최대 임무는 소련의 무기개발 정보를 캐내는 것이었지요.
9.11을 계기로 세계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은 국가간 전쟁이 아닌 동시다발 테러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지만 정보기관들은 점조직형 테러집단에 대처하기 위한 조직적 변신에 실패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지난해 스페인 마드리드 테러처럼 외국에서 잠입한 테러범이 아닌 ‘내부의 적’이 사건을 일으킬 경우에 대한 대응이 취약하다"고 말합니다.
‘스파이’가 없다
2001년 아프간 전쟁 때 미국은 이슬람 세력과 아편 밀매 군벌들, 부족집단이 얽히고설킨 아프간 내부 정보를 캐내지 못해 애를 먹었습니다.
당시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 언론들은 "정보당국이 첩보위성과 컴퓨터통신 등 하드웨어 개발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정보전의 기본인 스파이 인맥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었습니다. CIA 내에 아랍어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다는 얘기도 나왔고요.
하드웨어만 있고 `휴먼웨어'가 없다는 지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아프간 산악지대에 숨어 지내는 빈라덴은 위성통신망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전화기도 안 쓰고 사발통문으로 연락하며 테러조직들을 `지휘'합니다.
미국의 최첨단 정보기기들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전근대적인 통신체계로 돌아가는 것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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