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이 호주에 들어온 것은 침략(invasion)이다.”
호주 시드니 시의회가 27일 220여년 전 영국인들의 호주 정착을 ‘침략’으로 규정했습니다. 시의회는 시의 장기 플랜인 ‘2030 도시계획’을 만들면서, 이 문구를 넣는 방안을 놓고 표결을 해 7-2로 통과시켰습니다.
호주 전체는 아니고 시드니 시의회 차원의 규정이지만, 과거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반성과 규명 작업이 조금씩이나마 진전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선도적으로 이뤄진 것이라 큰 반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영국계 정착민 후손들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호주에서 침략이라는 단어를 놓고 논란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도시계획'은 “1788년 시드니 해안에 도착한 영국인 정착민들은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에오라(Eora) 부족 입장에서는 전통적으로 살아온 땅을 빼앗기는 점령으로 귀결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영국인들의 침략은 “원주민들에게 파괴적인 충격(devastating impact)을 주었다”고 명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원주민 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 중의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문구가 들어가게 된 데에는 원주민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원주민 단체들은 끔찍한 식민주의의 폐해를 분명히 밝히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이런 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고요. 이날 표결이 벌어진 의회 회의실에도 원주민 방청객들이 많이 왔었다고 합니다. 일부 시의원들은 ‘침략’이라는 논쟁적인 문구를 넣는 데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유럽인들이 도래하면서 원주민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는 모두 인정했다고 시 측은 설명했습니다.
이 자문위원회의 시드니 시위원회 측이 도시계획 문건에 담길 시드니의 역사 부분에 ‘침략’이라는 용어를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용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좀더 온건하게 들리는 ‘식민화(colonisation)’라는 단어로 대체하자고 주장했지만 표결 끝에 결국 침략으로 명시됐습니다.
전날까지도 클로버 무어 시장이 침략이라는 말을 피하자고 했는데, 원주민 단체들이나 자문위 측과 격론을 벌인 끝에 “그들이 겪었던 일은 침략이 맞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하네요.
(중학교 때 세계사에 대한 책을 보면서, 백인들이 호주 원주민들을 '사냥'하는 그림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게 호주의 이미지는 그 그림이었습니다. 끔찍한 인종 학살. 그것이 '침략'이 아니라고 한다면... -_- )
Captain James Cook at Botany Bay in April 1770 _텔레그라프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것이 홀로코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단 1분이라도 그 단어를 그들에게서 떼어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애버리지니들과 토레스 해협 섬 원주민이 침략이라고 믿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프리카계 주민들을 탄압했던 네덜란드계 백인들, 즉 ‘보어’인들도 같은 주장을 했었습니다. 남아공 흑인들은 자기네들과 비슷한 시기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외지인들이지 거기 원주민들이 아니라고요.
블랙 의원의 이런 억지 주장에 대해 원주민 자문위원들이 사퇴하겠다고 압박하고 나서는 등 설전이 한 차례 벌어졌다고 하는데요. 설득력이 있든 없든, 앞으로도 호주에서 ‘침략’이라는 용어에 대한 반감은 계속 일어날 것 같습니다.
Young Aborigines were 28 times more likely to be jailed than non-Aborigines, a found Tuesday, a "shameful state of affairs" that saw them accounting for 59 percent of the juvenile prison population. (AFP/File/Greg Wood)
지난 10년 새 교도소에 수감되는 원주민 비율은 66%가 뛰었습니다. 호주 전체 인구에서 원주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한데 교도소에 수감된 성인 중 25%가 원주민입니다. 청소년으로 내려가면, 교화시설 수용자 중 원주민이 59%를 차지합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교육 기회나 복지 혜택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빈곤에 시달리다 범죄에 노출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번 시드니 경우에서 보이듯 여전히 과거를 규정하는 용어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고요. 시드니 시의회는 영국 뿐 아니라 모든 유럽인의 도래를 침략으로 규정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릴 예정입니다. 시드니 외의 다른 자치단체들에서도 비슷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침략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뭄바이에서 또 테러 (1) | 2011.07.14 |
---|---|
쿠데타에 맞선 태국 국민의 승리 (1) | 2011.07.04 |
남중국해 갈등 점입가경 (0) | 2011.06.15 |
인도 대법원 "정부는 빈민구제하라" (0) | 2011.05.18 |
2010 아시아 (0) | 2010.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