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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라픽 샤미 '말하는 나무판자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

딸기21 2002. 6. 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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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삼촌은 타고난 발명가였다.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 동심을 지닌 삼촌이 세 번이나 구속되어 고문을 받았던 건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첫번째 구속은 별 것 아닌 일로 시작된 싸움 때문이었다. 손님 하나가 수리비를 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삼촌은 손님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 손님의 친척이 비밀경찰이라는 것을 몰랐던 삼촌은 시계를 가져가기 전에 수리비를 달라고 고집했다. 말이 말을 부르고 언성이 높아지자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당신이 사기꾼이라는 건 우리 가게에 들어설 때 벌써 알아봤지."
삼촌이 소리쳤다.
"어떻게 알았다는 거지? 예언가라도 되나?"
손님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래 예언가다."
흥분한 삼촌이 말했다.
"어디 다시 한번 말씀해보시지."
손님이 빈정댔다.
"그래, 난 예언가고, 네 앞날이 엉망진창이라는 것도 훤히 보인다구."
삼촌은 역정을 내며 대들었다. 손님은 삼촌을 고소했고 바로 그날 저녁 삼촌은 구속됐다.



남자의 친척은 일방적으로 삼촌을 때리고 사흘 동안 고문했다. 나흘째 되는 날 그 친척은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삼촌을 다른 비밀경찰에게 넘겨주었다. 자료를 검토한 그 경찰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은 삼촌의 당당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삼촌에게 차를 권하며 정말로 예언가라고 주장했느냐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건 신을 모독하는 말 아닌가? 신의 가호를 받은 예언가는 모하메드 분이니까. 당신이 어떻게 예언가라는 거지? 한번 해명을 해봐!"
"경관님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삼촌이 태평스럽게 말했다.
"그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나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 말에 경관은 좀 당황했는지 얼른 속기사를 쳐다보았다.
"사기꾼을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죠."
속기사가 삼촌을 보며 단호하게 말하자, 경관이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모르가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삼촌이 말했다.
"좋아, 그럼 말해봐!"
경찰의 말에 삼촌은 앞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거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예언이야? 그런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잖아!"
모르가나 정부의 발표는 온통 장밋빛 청사진 뿐이었지만, 경찰은 손을 내저으며 그렇게 말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어서 나를 석방시켜 주십시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모두 예언가니까."
"아브라함은 불 속에 뛰어들어 불을 껐지.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나?"
경찰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아니, 난 예언가라고 했지 소방수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모세는 홍해를 두 쪽으로 갈랐지. 그건 할 수 있겠지?"
경관이 계속 짓궂게 물었다.
"프랑스의 레셉스는 수에즈 운하를 만들어 끊어진 바다를 이어줬지요. 러시아 사람들은 제방을 쌓아 유프라테스 강과 나일 강의 물줄기를 막았고요. 나누어 놓는다든가 이어주는 것은 기술자들이 할 일이지 예언가의 몫이 아닙니다."
삼촌이 침착하게 말했다.
경관은 큰 소리로 웃었다.
"당신은 정말 교묘한 사기꾼이군. 하지만 나한테는 못 당할 걸. 예수는 죽은 자를 부활시켰는데 그것도 할 수 있겠나?"
"그럼요, 할 수 있고 말고요!"
삼촌이 소리쳤다.
"권총 좀 줘보세요. 경관님을 쏜 다음, 금방 다시 부활시켜드릴 테니까요."
"이야기가 점점 재미있어지는군."
속기사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경관은 펄쩍 뛰었다.
"예언가라고 믿어줄테니 어서 빨리 사라져버려!"
삼촌은 석방됐지만, 시계 주인에게서 수리비를 절반만 받기로 약속해야 했다.

두번째는 삼촌이 직접 만든 이상하게 생긴 라디오 때문이었다. 라디오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삼촌을 본 행인이 그 이상한 기계를 비밀 통신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기계로 삼촌이 이스라엘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정말로 뛰어난 발명품 때문에 구속되었다. '나'라고 이름 붙인 말하는 나무판자가 화근이었다. 당시 몇주간 잠적했던 삼촌 때문에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다. 어느날 다시 나타난 삼촌은 머리를 짧게 깎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그 나무판자를 들고 환한 얼굴로 우리 집에 들어섰다.


인도 서커스단이 모르가나에서 공연하던 당시 하덱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다니엘 삼촌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특별 훈령을 내렸다. 하덱 대통령은 장난감 애호가였다. 그가 왜 그렇게 삼촌에게 우호적이었는지 짧게라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르가나에서는 아직도 수공업을 대물림한다. 이발사, 보석세공인, 제과기술자들은 거의 대부분 중세 때부터 같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수백년 동안 매일 저녁 찻집에서 이야기를 하며 살아온 집안도 있다. 하덱 대통령의 가문도 칠백년 전부터 같은 직업에 종사해왔다. 모르가나를 통치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벌써 오래 전부터 이 나라 대통령의 이름은 하덱이었다. 야당의 당수도 하덱이고, 반란군의 지도자도 하덱이었다. 승리를 거두고, 정권을 잡은 사람은 언제나 이름이 하덱이었다. 하덱은 아랍어로 '당연하다'는 뜻이다.
모든 지도자들의 성이 하덱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름으로 구분하기도 했지만 알리, 압둘라, 무스타파라는 이름도 수백 개씩 되었고, 이름 뒤에 숫자를 넣는 것도 처음 얼마간 뿐이었다. 몇백년이 지나자 듣기 거북하게 되었다. 어떻게 알리 술탄 397세, 압둘라 대통령 85세라고 부른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착각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냈다. '하덱'들을 시인, 독립운동가, 미남, 사팔뜨기, 사기꾼 폭군 등으로 구분한 것이다. 아랍어에 형용사가 풍부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덱은 더이상은 혼동되지 않았다.


서커스 구경을 왔던 하덱 대통령한테는 장난감 애호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하덱 집안은 워낙 커서 그들은 모든 계층에 퍼져서 살고 있었는데, 그는 집이 너무 가난해 어렸을 때 한번도 장난감을 갖고 놀아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는 정권을 거머쥔 지 이틀만에 모르가나에서 구할 수 있는 온갖 장난감, 곰돌이 인형, 소꿉장난 도구들을 긁어모아 높은 빌딩 한 채를 온통 그것들로 채웠다. 상인들이 장난감을 다시 수입해올 때까지 2주 동안 시내에는 장난감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집무에 지칠 때면 대통령은 늘 그 빌딩으로가 장난감들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렇게 몇시간 놀고 나오면 그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외국여행을 갔다올 때도 항상 특이한 장난감들을 사가지고 왔다.
대통령이 장난감들을 소중하게 다루기는 했지만 한두 군데 부러지거나 고장나지 않을 순 없었다. 솜씨가 뛰어난 기술자들이 고쳤지만 대통령은 흡족해하지 않았다. 일단 고치고 나면 장난감들이 원래의 상태에서 변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러던 중 그 비밀경찰을 토해 대통령이 다니엘 삼촌을 알게 되었다. 대통령에게 불려간 삼촌은 대통령이 지켜보는 앞에서 값비싼 장난감들을 고쳐 주고, 작동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삼촌을 장난감 빌딩의 책임자로 임명하려 했지만 삼촌은 끝내 거절했다. 이를 지켜본 경호원들은 대통령이 그를 체포해 지하감옥에 집어넣으리라 생각했지만, 대통령은 정중하게 거절하는 이유를 물었다.
"제 작업실에서 제가 만든 장난감들을 갖고 놀고 싶으니까요. 장난감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그곳이 곧 천국이거든요."
하덱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그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종종 수선을 부탁해도 되겠느냐고만 물었다.
"언제라도 좋습니다, 각하. 밤이든 낮이든 곧장 달려오겠습니다. 그 대신 더이상 제가 구속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대체 어떤 몹쓸 놈이 너를 괴롭혔단 말이냐?"
대통령이 벌컥 화를 내며 물었다. 삼촌은 불과 2주 전에 말하는 나무판자 때문에 세번째로 구속되었던 일을 대통령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잠자코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특별 훈령을 내리겠다. 앞으로 다시는 이 사람을 구속하지 마라. 하덱 집안 사람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설마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크게 웃으며 그렇게 말한 대통령은 직접 문까지 나와 삼촌을 배웅했다.


다니엘 삼촌은 새로운 것을 발명하기도 했지만, 이미 발명되어 있는 것들에 재미있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다. 삼촌이 우산에 대해 이웃들 앞에서 설명하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우산이 왜 그런 모양인지 아세요? 그렇게 해야만 절묘하게 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절대로 우연이 아닙니다. 옷이나 침대, 자동차에서 열쇠까지 그동안 모양이 수백 번 바뀌었지만 우산만은 변하지 않았어요. 처음 발명되었을 때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요. 비밀은 그 마술 같은 모양 속에 있습니다. 서로 대칭을 이루는 우산살과, 단도처럼 날렵하거나 파이프처럼 뭉툭하거나 항상 우산살의 한가운데를 떠받들고 있는 우산대와 함께 우산은 접혀서 차분히 아래를 향하고 있거나, 구름을 가리고 있을 때 언제나 둥근 모양을 유지하지요. 펼치지 않아도 우산은 종종 마술을 부리죠. 난 겨울을 세 번 보내면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 우산을 가지고 나가면 먹구름이 잔뜩 낀 날에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우산을 안 가지고 나가면 영락없이 비가 왔죠. 우박까지 내리더라구요."

어느날 난 다니엘 삼촌의 작업실에서 신기한 기계를 하나 보았다. 생긴 모습은 어린 왕자 같았는데 한 시간마다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머리를 숙이거나 눈을 움직이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크게 하품도 했다.
이틀 후에 다시 삼촌을 찾아갔는데 왕자는 전과 같이 행동했지만 이상하게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제는 조용해서 훨씬 좋았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삼촌이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했던 것이다. 삼촌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기계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나면 손님들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톱니바퀴 도는 소리가 가볍게 나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

여러 가지 기계와 도구, 시계들을 만들었지만 삼촌의 최대 걸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말하는 나무판자였다. '나'라고 이름 붙인 그 나무판자 때문에 삼촌은 세번째 구속을 당했다.
삼촌은 그 신기한 물건을 아주 우연히 발명했다. 그것은 종이조각, 철사, 유리 조각, 코르크, 구슬, 양철 조각, 종들이 매달려 있는 커다란 나무판자였는데 삼촌이 그것들을 일정한 순서대로 문지르면 말을 하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났다. 제일 확실하게 나는 소리가 '아나'였는데 그게 아랍어로 '나'라는 의미여서 그것이 판자의 이름이 된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삼촌은 신기한 물건을 만들게 해준 그 우연을 소홀히 하지 않고 그 나무판자를 더 멋있게 완성했다.
수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삼촌은 손으로 문지르는 방법에 따라 그 판자가 완전한 문장을 말하게끔 만들었다. 삼개월 정도가 더 지나자 삼촌은 이웃을 불러놓고 그 말하는 판자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게 뭐예요?"
삼촌이 테이블을 여러 개 붙여놓고 그것을 올려놓자 사람들이 물었다.
삼촌이 그 이상한 물건 위에 손을 대고 두 번 정도 문지르자 널빤지가 '나'라고 대답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새로 나온 침대냐며 빈정대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내 이름은 '나', 난 침묵의 시대에 말을 하는 목소리. 이 무언의 시대에 말을 하는 목소리죠."
나무 판자가 그렇게 말하자 이웃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조세핀 할머니는 얼른 성호를 그으며 악귀를 물리치는 주문을 외웠다. 나무판자가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신기한 것은 복잡한 그것 위를 비비고 쓰다듬고 꼬집는 삼촌의 손놀림이었다.
"내 몸의 양철과 유리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못과 종이, 철사 등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노력할 거예요."
나무 판자의 말에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대하며 모두들 웃었다. 이야기 중에 한두 사람은 방금 전에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엄마"라고 나무판자가 다시 말했다.
"아하, 난 '맘마'라고 하는 줄 알았지."
그렇게 말하며 질문한 사람이 멋쩍어하면 사람들은 아기가 우유병에 안기는 모습을 상상하며 까르르 웃었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사람들이 삼촌의 손에 건강과 행운을 빌어주자, 나무판자가 대답했다.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돌아가신 선조와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함께 하시길."


다음날 삼촌은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이상한 물건으로 정부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혐의였다. 삼촌이 나무판자를 가져와 손으로 문질러보았지만 널빤지는 삑삑거리는 소리만 낼 뿐, 제대로 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시범을 보이라고 추궁 당하고 고문도 받았지만 나무판자는 계속해서 듣기 싫은 소리만 냈다. 경찰들이 직접 해보기도 했지만 평범한 둔탁한 소리만 났다. 몇주일이 지난 후 경찰들은 어쩔 수 없이 삼촌을 석방시켰다.
삼촌이 석방되어 나오자 그 동안 삼촌을 멀리했던 어머니는 이웃 사람들과 함께 삼촌을 찾아갔다. 난 어머니보다 먼저 가 있었다. 숙모나 이웃들의 기도 따윈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삼촌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삼촌 집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삼촌 모습이 많이 변해 있었다. 얼굴엔 깊은 상처가 나 있고, 머리는 짧게 깎았으며, 오른쪽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삼촌은 밝게 웃고 있었지만 너무 측은해 보여 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며 울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어머니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꼭 끌어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웃어 보이려 애썼다.
숙모는 여전히 묵주를 손에 들고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참다 못한 어머니가 소리쳤다.
"장님인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노새처럼 그렇게 앉아 있기만 하면 어떻게 해? 어서 일어나라구."
그제야 숙모가 일어나 커피를 끓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사람들은 삼촌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삼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무판자에 남아 있던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못 몇 개를 제대로 세우고, 철사를 이은 다음 옛날처럼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어때요? 정말 멋지게 해냈죠?"
나무판자가 말을 했다.
나흘째 되는 날, 서커스에서 난 다니엘 삼촌 이야기를 해주었다.

-라픽 샤미, '1001개의 거짓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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