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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픽 샤미, '1001개의 거짓말'

딸기21 2002. 6. 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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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개의 거짓말 

라픽 샤미 (지은이) | 유혜자 (옮긴이) | 문학동네 | 2002-04-08 


오랜만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책을 읽었다. 라픽 사미의 소설이라면 예전에 '한줌의 별빛'을 읽은 적이 있다. 시리아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 소년 사이의 우정을 그린 것이었는데, 아주 느낌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1001개의 거짓말'은 소설이라면 소설이고, 우화라면 우화이고, 또 주인공 사딕의 주장대로,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어느 것이 거짓말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이 다단한 세상에서 선뜻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무엇이든 진실의 일면과 거짓의 일면을 갖고 있는데. 순환논법에 회의론이냐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유려한 말솜씨로 사딕이 풀어내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몇차례나 배를 쥐고 웃었다. 



주인공 사딕이 살고 있는 곳은 시리아의 모르가나. 어느날 인도에서 서커스단이 찾아오는데, 하필이면 독재자 대통령과 쿠데타군과의 전쟁 때문에 이 작은 도시에 갇혀 서커스단이 떠나지를 못하게 됐다. 이야기꾼 사딕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과 이웃이 되어버린 서커스단에서 여러 친척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된다. 


'1001개의 거짓말'은 사딕과 다종다양한 친척들의 이야기이고, 천일야화에 나오는 오래된 전설과 거짓말들이고, 또 지금은 늙어 옛 추억을 곱씹게된 늙은 사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서구화되고, 이야기조차도 서양식 이야기에 익숙하게 됐지만 역시나 '동양적인 그 무엇'이 주는 친숙함이란 것은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딕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줄곧 아주 편안히 긴 의자에 누워서 혹은 이불 덮고 온돌 바닥에 드러누워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아주 즐거웠다. 바다 속 얼음여왕의 이야기, 기억력이 아주 좋은 코끼리 이야기, 가짜 대통령 노릇을 하다가 교통순경이 된 무쉰의 이야기, 대대로 이름이 똑같은 하덱이라는 독재자의 이야기... 모르가나에 염소가 사라지기 전과 그 이후. 늙은 사딕은 그렇게 추억의 분기점에 이름을 붙였다. 염소몰이꾼이 아침마다 염소를 끌고 다니며 신선한 염소젖을 그 자리에서 짜내어 팔던 시절과, 정부에서 들여온 젖소에게서 짜낸 '수감된 우유'를 먹기 시작하게 된 이후의 시절. 그것은 분명 우리가 '현대화' 혹은 '서구화'라고 부르는 것들을 의미하는 시대구분이다. 


사딕이 스스로도 '거짓말 혹은 진실'이라고 이름붙인 우화 하나하나에는 인간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통찰력이 깊이 배어있다. 그러면서 독재자와 서구화의 문제 같은 커다란 이슈들도 피해가지 않는다. 어째서 아라비아에는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은지. 사막이기 때문이라고 사딕은 말한다. 새하얀 눈과 푸른 바다는 아주 아름답지만, 사막의 신기루처럼 '진실 혹은 거짓말'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지 않느냐고, 사막의 신기루가 아랍 사람들에게 그런 아름다운 환상들을 불어넣어 준 것이라고. 


이야기 한편 한편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익살맞아서 여러 종류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스크랩] 라픽 샤미 '말하는 나무판자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