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스크랩] 엘뤼아르의 '시론'

딸기21 2002. 10. 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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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실제적인 진실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말이 많은 내 친구들에게


숲속에 태양이 침대 속에서 몸을 맡긴 여자의 아랫배와 같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내 말을 믿고 내 모든 욕망을 이해합니다. 비오는 날 수정이 언제나 사랑의 무료함 속에서 소리를 울린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내 말을 믿고 사랑의 시간을 지연합니다. 내 침대의 많은 가지 위에서 결코 동의를 표시하지 않는 새 한 마리가 집을 짓는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내 말을 믿고 나의 불안을 함께 나눕니다. 움푹 파인 샘물의 밑바닥에서 푸른 풀잎을 살포시 열며 강물의 열쇠가 돌아간다고 말한다면 당신들은 여전히 내 말을 믿고 더욱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 모든 나의 거리와 끝없는 거리와 같은 나의 이 조국을 솔직히 노래한다면 당신들은 이제 내 말을 믿지 않고 인간이 부재한 곳으로 떠나 갑니다. 당신들은 목적도 없이 걷기 때문에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 인간은 뭉쳐야 하고 희망하고 투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내 애정의 발길로 당신들을 인도하리라 나는 힘이 없지만 나는 살았고 나는 아직도 살고 있으니 나의 말은 아연히 당신들의 영혼을 사로 잡으리라 빛을 쌓아가는 우리의 형제들과 새벽녘 이슬이 맺힌 해초와 등심초와 당신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당신들을 해방하기 위해. /폴 엘뤼아르

꼬야님 덕에 엘뤼아르를 기억의 박물관에 소장하게 된 것을 기념해서, 그리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형제>니 <세계>니 <해방>이나 하는 책 속의 그 단어들이 전해주는 울림을 세포의 말단에서나마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것을 기념해서. <시>라는 것, 언어라는 것을 우습게 여기면서 아무 말이나 쏟아뱉었던 것을 반성하면서, 글쓰는 것의 무게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글 쓰는 행위와 그외 부수적인 것들을 숭상해온 것을 반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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