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스크랩] 살렘의 왕 멜키세덱

딸기21 2002. 10. 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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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도시인 타리파의 경사지에는 예전에 무어인들이 건설한 오래된 요새가 있었다. 그 요새의 성벽 위에 앉으면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였고, 바다 건너 아프리카 땅도 시야에 들어왔다.
살렘의 왕 멜키세덱은 그날 오후 요새의 성벽 위에 앉아 불어오는 레반터(동풍)를 맞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양 여섯 마리가 주인이 바뀐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 끊임없이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먹이와 물 뿐이었다.
멜키세덱은 부두를 떠나는 작은 배 한 척을 보았다. 그 젊은 양치기를 다시 만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후에도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의 일이었다.
신들은 욕망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신들에게는 자아의 신화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살렘의 왕은 마음속 깊이 청년의 행운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젊은이는 곧 내 이름을 잊어버리겠지. 여러번 더 반복해주었어야 했는데. 저 젊은이가 언젠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살렘의 왕 멜키세덱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러나 다음 순간 고개를 젓고는 뉘우치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주여, 아옵니다. 말씀대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하지만 늙은 왕이란 때로는 혼자서 우쭐해보기도 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중에서



아브라함을 만난 멜키세덱


양치기는 가진 양의 십분의 일, 여섯 마리의 양을 멜키세덱에게 주고서 보물을 찾으러 떠난다. 피라미드 주변에 숨겨져 있다는 그 보물을 찾기 위해. 


자아의 신화. 신의 이름으로 주어진 명령. 그렇지만 신은 결국 마음 속에 있다. 명령을 전해주는 자의 이름, <살렘의 왕 멜키세덱>. 성경에 나오는 멜키세덱은 단순한 메신저가 아니라, 훗날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암시하는 대사제다. 빵과 포도주로 축복해주는 사람, 그리고 신의 뜻을 전해주는 대가로 아브라함의 재물(십일조)을 받는 사람.


나는 어딘가에서 멜키세덱을 만났는데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인지도 몰라. 벌써 서른 둘, 한번도 만난 일이 없을 리는 없거든.

(여담이지만, '소공녀'의 세라가 다락방에서 키우던 쥐의 이름이 멜키세덱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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