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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패러독스> 미국 중도우파의 '건전한' 시각?

딸기21 2002. 9. 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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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패러독스 

The Paradox of American Power: Why the World's Only Superpower Can't Go It Alone
조지프 S. 나이 (지은이) | 홍수원 (옮긴이) | 세종연구원 | 2002-07-29 | 원제 



조지프 나이(Joseph Nye) 만큼 우리나라 언론에 코멘테이터로 자주 등장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미 9.11 테러 1주년 특집을 다루는 여러 신문에서 나이의 이야기가 나왔고 인터뷰까지 다뤄졌다.


지금은 그 유명한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학장으로 있지만 클린턴 정권에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낸 것을 포함해 명실상부한 <외교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나이의 저서 중에는 <국제분쟁의 이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과 그 책은 성격이 좀 다르지만 스타일은 비슷하다. 


둘다 <교과서>처럼 쓰여져 있다는 점에서 읽기에는 아주 편하다. 문장이 아주 명확하고 단순하기 때문에(노암 촘스키 식의 비꼬기나 신랄함, 폴 케네디 류의 '뻥튀기 기법' 같은 장식물들이 전혀 없다--) 이해 못할 문장도 없고, 그렇다고 똑별나게 인상적인 부분도 없다. 예컨대, 나이가 말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다. '무엇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둘째, 셋째...'  좋게 말하면 명쾌하지만 책 읽는 재미는 별로 없다. 아마도 나이의 <스타일>이 아닌가 싶은데, 문체 면에서나 저자의 캐릭터 면에서나 모두 해당되는 얘기인 것 같다.

<제국의 패러독스>에서 주장하는 것-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효과적 결합-은 이미 나이가 예전부터 얘기해왔던 것들이라서 사실 참신성 면에서는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것만큼 내공을 추가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클린턴 시절 외교안보에 감놔라 배놔라를 했었던 인물이 조지 W 부시 정권 이후의 행보들, 특히 <미국의 오만> 내지는 <일방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받았던 일련의 작태들에 대한 시의적절한 평가를 내린 부분은 충분히 눈길을 끌만 하다. 또 나이가 갖고 있는 예의 <과장 없는> 스타일에 기대어 신뢰감 있게 읽을 수 있다. 


한때 미국 외교를 좌지우지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충고(<거대한 체스판>)가 원대한 통찰력을 가진 미국 엘리트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제3국인이 보기에는 오만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을 그대로 드러내보인 것이었다면, <제국의 패러독스>는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고 있는 미국의 중도적 지식인의 세계관을 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하다.

역자는 나이를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는 예리한 지성인>이라고 평가해놨는데 일면 사실이고 일면 사실이 아니다. 미국은 하드 파워(군사력)를 과도하게 행사해서 소프트 파워(문화적 헤게모니)를 잠식해서는 안 된다, 즉 일방주의적 외교로 수하의 나라들을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전략적 이익>이 걸린 부분에서는 일방주의의 위험을 무조건 피해서는 안 된다...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이것인데 읽다 보면 합리적인 부분도 많지만 '역시나 <미국의 오만함>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는군'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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