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기울어진 아이

딸기21 2001. 1. 5. 10:34

기울어진 아이 

프랑수아 스퀴텐 | 보누아 페테르스 (지은이) | 정장진 (옮긴이) | 세미콜론


프랑스 만화인데, 참 멋집니다. 아주 섬세한 선으로 구성된 그림의 사실성과 원근감이 굉장히 멋있습니다. 베누아 페터즈 글, 프랑수아 스퀴텐 그림. 글 쓴 이나 그림 그린 이나 모두 존경스럽습니다.


마리라는 소녀는 부잣집 딸인데, 747년이라는, 어디 기준인지 알 수 없는 어떠한 연대의 사람입니다.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빈부 격차가 굉장히 심한 곳인가봅니다. 마리는 부유한 엄마 아빠랑 사는 동안 ‘홍당무’같은 존재였습니다. ‘아유, 쟤는 진짜 문제야’ 이런 소리들만 듣던 마리가 어느날 롤러코스터를 탄 뒤로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버립니다. 


‘기울어진 아이’라...일단 저는 ‘왜 기울어졌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접어둔 채, ‘기울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마리는 집을 나와 곡마단의 구경거리로 줄타기를 하면서 나이를 먹어갑니다. 



한쪽엔 기울어진 마리가 있고, 한쪽에는 또 오귀스탱이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오귀스탱은 아마도 지구의 인간인 모양입니다. 1800년대의 어느 낯선 광야, 낡은 저택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화가의 부분은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귀스탱과 마리, 사진과 만화, 실사와 환상,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만나는 곳은 그럼 어디일까요. 


마리는 기울어진 몸을 치료하기 위해 악셀이라는 과학자에게 찾아갑니다. 악셀은 마리와 함께 낯선 행성-어쩌면 지구 깊숙한 곳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인간 뇌 속의 세계인지도 모르는-에 떨어지죠.


오귀스탱과 마리를 이어주는 것은 악셀과 쥘 베르느입니다. 베르느는 다들 아시죠.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을 쓴 소설가 아닙니까. 소설가가 갑자기 낯선 행성에 등장하다니, 이 만화의 대본을 쓴 베누아 페터즈가 무슨 얘기를 하려 하는지 조금은 짐작이 갈 듯도 합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수수께끼로만 보려 할 뿐 삶을 살아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기울어진 마리가 정상을 찾는 과정은 균열되어 있던 인간의 자아와 상상력, 성적인 성장의 경험, 환상과 현실, 혼돈과 질서,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 경험과 추억, 이 모든 것들이 통합되는 과정입니다. 


전반적으로 시선이 따뜻하고, 그림의 필치도 탄탄하면서 섬세합니다. 평자들은 스퀴텐의 그림이 ‘건축’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선으로만 묘사된 멋진 그림 보는 것만으로도 책값이 아깝지 않은 만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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