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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는 공간은, 글쎄, 별로 가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기껏해야 제주도나 거제도밖에 가본 일이 없는데 그 묘한 어감의 공간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내 경험과 지각력이 못 미치는 것 같다.
스페인 작가 미겔란쏘 프라도의 '섬'은 아주 어둡고 아름다운 화면으로 구성된 그림책이다. 굳이 따지자면 '만화'인데, 현실문화연구에서 앞서 발간한 엥키 빌랄의 '니코폴'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적'이고 멋지다.
외딴 섬. 이 섬의 특징을 가리키는 표현은 '지도에 나와있지 않은 섬'이라는 말이다. 지도에 나와있지 않다는 것은 1차적으로 이 섬이 아주 작다는 뜻이면서, 한 차원 더 들어가면 이 섬이 인간의 환상 속에 위치하는 공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은 섬에 살고 있는 한 여자(여관주인 사라), 우연히 찾아온 한 남자(여관 손님1-라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한 여자(손님 2-아나), 사라의 아들(디마)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다시 말해 등장인물 전체가 주인공인 셈이다.
아나는 이 섬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이 섬의 부두에는 배가 없고, 이 섬의 등대는 불이 꺼졌고, 이 섬이 여관에는 손님이 없다. '존재 그 자체 외에는 무용지물인 듯한' 것이 이 섬의 구성요소들이다. 막연한 기다림, 고독함만이 존재하는 이 섬에 백수건달 두 남자(손님 3, 4)가 찾아오고, 이어 빚어지는 강간 소동, 그리고 아나와 라울의 이별. 그렇다 해서 아나와 라울이 똑별난 관계를 맺었던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아마 그건 '줄거리'만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책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빛깔'을 보는 것이다. 파스텔로 그려진 이 책의 그림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색조가 달라진다. 어떤 부분에서는 인상파의 작품처럼 밝지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짙은 황토빛으로 어두워진다.
라울이 섬에 찾아왔을 때에는 화면이 온통 그림엽서풍의 이쁜 색깔들로 가득차있다. 파란 하늘, 하얀 갈매기, 하얀 방파제. 독자들이 섬이라는 공간이 주는 외로움에 젖어들 무렵이면 날이 저물듯 화면은 어두워지고, 짙푸른 밤의 빛깔로 변한다. 무식하고 야만적인 손님 3, 4의 등장한 뒤로는 아예 배경이 흙빛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뒤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뭘까. 이성과 욕망의 맞부딪침? 아나와 라울이 이성적이고 지적이라면 사라와 손님 3, 4는 본능적이고 야만적이다. 두 측면의 맞부딪침은 '강간'이라는 가장 야수적인 사건을 통해 표현된다.
내가 만약 아나처럼(난 차마 '사라처럼'이라는 생각은 못 하겠다) 외딴 섬에 홀로 있다면 나의 의식은 어떻게 흘러갈까. 외로울 것이고, 무언가를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내가 기다리는 대상이 '누군가'일지 혹은 어떤 '사건'일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존재에 '밑바닥'이 있다면, 아마 아나가 있었던 저 섬에 있을 것 같다. 그 섬에 가고 싶냐고? 절대 아니다.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는데 지쳐 기껏 갈매기 한 마리에 정을 쏟게 만드는 그런 적막함이 싫으니까.
아름다운 색채 속에서 어둡기 그지없는 내면을 봐야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 재미없는 일이지만 멋진 그림으로 눈이 시원해졌으니 작가에게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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