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L. 프리드먼 (지은이) | 장경덕 (옮긴이) | 21세기북스
뉴욕타임즈의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화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놨다. 세계화의 껍데기만 뒤집어쓰면 뭐든 되는 줄 믿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을 향한 잔소리가 아니고, '아직도 세계화될 준비가 안 된 팔불출들'에게 쏟아놓는 잔소리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혼다자동차의 인기 브랜드네임을 빗댄 '렉서스'는 세계화, 기술, 인터넷 등등을 뜻하는 것이고, '올리브나무'는 국가, 민족, 문화, 정서 따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저자 자신이 유태인이다보니 올리브나무를 '옛스런 감정'의 대유물로 삼았나보다.
하필이면 이 책을 보고 있는 와중에 텔레비전을 켜니 우리나라에서도 렉서스 광고가 펼쳐지고 있었다.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씁쓸한 심정이 드는 건 내가 '올리브나무 주의자'이기 때문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프리드먼은 이 세상 60억 인구를 '렉서스주의자'와 '올리브주의자'로 나눠놨는데, 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에 둘 다 공존하고 있지 않느냔 얘기다.
예전에 뉴욕타임즈의 오피니언란에 실린 프리드먼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이 책을 샀는데, 읽고 나니 씁쓸하다. 세계화 공룡의 꼬리질에 머리를 얻어맞고 등뼈가 부러져나갈 판인 '글로벌의 희생자들'에게 프리드먼은 '글로벌화의 대세를 거부한 올리브주의자'라는 혐의를 붙인다. 아주 점잖은 어조로, 이스라엘과 이란과 방글라데시와 한국과 미국과 프랑스와 러시아와 인도 같은 온갖 나라들의 예를 들면서.
프리드먼이 오만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일본인이, 어느 프랑스인이, 어느 러시아인이, 하물며 어느 한국인이 이렇게 오만할 수가 있겠는가. 미국화가 곧 세계화임을 프리드먼 스스로 자신있게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모두 가진 미국인 외에 어느 나라 사람이 감히 "다운로드 할래, 죽을래"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부러운 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인 뉴욕타임즈 국제문제 컬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저자의 입지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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