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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집트 특사', 그리고 '추악한 역사'

딸기21 2011. 2. 9. 15:52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집트 민주화 시위라는 ‘사건’을 만나서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집트 특사’로 임명한 사람은 프랭크 와이즈너라는 인물입니다.


경향신문 국제부 김기범 기자가 영국 진보적 일간지 인디펜던트 보도를 인용해, 와이즈너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간의 ‘특수관계’를 지적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기사에서 지적한 것은, 와이즈너가 현재 패튼 보그스라는 로펌에 소속돼 있고 이 로펌은 무바라크 일가와 이집트 기득권층의 이익에 결부돼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오바마 정부가 ‘무바라크 쪽 로비스트를 무바라크에 보내는 특사로 임명했다’는 것입니다.




(패튼 보그스 사이트에 곱게 걸린 특사님의 사진)


하지만 와이즈너와 관련해서는, 더 들여다 볼 일들이 있습니다.


와이즈너의 아버지는 이름이 똑같은 프랭크 와이즈너(Frank Gardiner Wisner. 1909-1965)입니다.

버지니아 주립대학을 나와서 월스트리트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아버지 와이즈너는 1941년 태평양전쟁의 빌미가 된 일본 군의 진주만 공격 6개월 전에 해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해군 검열국을 거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 미군 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OSS)에서 근무했고요. 이런저런 계기로 동유럽 전선에서 복무하게 됐고, 2차대전 이후에는 루마니아를 거점으로 소련에 대한 첩보활동을 주도합니다.


한국전쟁 발발의 도화선이 됐다고 해서 우리도 다 들어본 ‘애치슨 선언’의 딘 애치슨. 훗날 미 국무부 차관을 지낸 애치슨은 1947년 와이즈너를 국무부 산하 점령지사무국(Office of Occupied Territories)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말하자면 와이즈너는 국무부 내 ‘정보라인’이 된 거지요. 그 다음해 미 중앙정보국(CIA)은 정책조정실(OPC)이라는 비밀스런 조직을 만들었는데요. 이 OPC를 이끌게 된 것이 와이즈너입니다. 



와이즈너는 옛 친구들을 불러모아 가지가지 은밀한 공작들을 실행에 옮깁니다. OPC 내부 규칙에 따르면 당시의 공작들은 “선전선동, 경제적 투쟁, 예방적 직접 행동, 사보타주 및 반 사보타주, 각종 제거·소개작전, 적대적 국가의 체제 전복, (적대적 정권에 맞선) 지하 저항그룹 지원, 반공산주의 세력 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는군요. CIA의 어두운 이미지, 그 모든 것들이 OPC의 업무 분야에 포괄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와이즈너가 1947년 시작한 것이 국내외 미디어 장악을 위한 프로그램인 ‘앵무새 작전(Operation Mockingbird)’입니다. 1952년 와이즈너는 리처드 헬름스(린든 B 존슨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CIA 국장을 지낸 인물이죠)와 함께 권세를 휘두르며 계획감독관실(Directorate of Plans)을 만들어 보스 자리를 꿰어찼습니다. 와이즈너의 사무실이 CIA 전체 예산의 75%를 썼다 하지요. 

와이즈너는 한마디로 오늘날의 CIA를 만든 인물, CIA의 모든 어두운 뒷공작의 모델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엄청난 예산을 쥐고 전세계에 CIA 거점을 만들었으며 2차 대전 후 혼란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아버지 와이즈너에 대해 좀더 알아보려면

http://arlingtoncemetery.net/fgwisner.htm
(알링턴 국립묘지 사이트의 와이즈너 공식 소개글)



와이즈너가 저지른 공작 중 대표적인 것이 과테말라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정권을 전복시킨 일입니다. 구스만은 농지개혁에 착수했다가 지주와 부자들의 반발을 샀죠. 미국도 민족주의 성향의 구스만을 미워해서 물밑 공작으로 반 구스만 군부를 밀어줬죠. 결국 미국의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은 쿠데타 세력에 밀려 국외로 축출돼 남미 여러 나라들을 떠돌다가 객사합니다.


구스만보다 더 중요한, 와이즈너의 핵심 ‘체제 전복 대상’은 이란의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그(1882-1967)였습니다.


▶ 이란의 역사에 대해서는 http://ttalgi21.khan.kr/3254 를 참고하시고요.




(이란 총리를 지내다 축출된 모사데그)


모사데그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총리로, 1951년 집권했습니다. 저술가 겸 행정가, 법률가로 명망을 날리던 인물이었는데 영국계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민족주의 정책을 펼쳤다가 미국에 찍혔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죠? 1979년 이슬람혁명 전까지 이란은 이집트,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 마리 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이란이 석유 국유화라는 짓을 한 겁니다! 

와이즈너의 CIA는 당장 영국의 악명 높은 군 대외정보국(이름하여 MI6)과 함께 공작을 벌여 모사데그 정권 축출에 나섭니다. 결국 모사데그는 쿠데타로 쫓겨났습니다. 그 뒤로 이란에서는 썩어빠진 파흘라비 왕조의 전제정치가 시작돼 백색테러와 억압통치가 자행됐고요. 


▶ 첩보기관 이야기는 http://ttalgi21.khan.kr/343 를 참고하세요


모사데그 축출작전은 미국이 중동에서 저지른 ‘친 독재 반 민주 체제전복 공작’의 모델이 됐습니다. 이 비슷한 일들은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집권 과정에서 그대로 되풀이됐습니다.


와이즈너의 횡포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날로 커져가는 CIA의 권력을 시샘한 연방경찰국(FBI)의 에드가 후버가 조사를 지시했을 정도랍니다. 후버는 OPC를 “와이즈너네 못된 패거리(Wisner‘s gang of weirdos)”라 불렀다네요. 

후버 쪽에서는 와이즈너네 팀원 일부가 좌익 활동 경력이 있다는 걸 알아냈고, 이를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 쪽에 흘렸습니다. 후버가 속닥거린 정보 중에는 와이즈너가 2차 대전 시기 루마니아 왕실의 카라자 공주와 염문을 뿌린 사실 등등이 포함돼 있었다나 어쨌다나...


암튼 악명 높던 와이즈너는 나중에 런던 CIA 지부를 이끌었지만 정신병에 걸려 미국으로 되돌아왔고, 집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뒤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맏아들이 무바라크네 로비스트 하면서 특사도 하는, 프랭크 와이즈너입니다. 


아들 와이즈너는 1976년 지미 카터 행정부 시절 국무부에 들어갔고 잠비아 대사(1979-82), 이집트 대사(1986-91), 필리핀 대사(1991-92), 인도 대사(1994-97)를 지낸 베테랑 외교관입니다. 


하지만 이 인물의 행보에서 논란이 빚어졌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1997년 관료 생활에서 은퇴한 다음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엔론(엄청난 스캔들을 일으킨 뒤 파산한 에너지회사;;)의 이사를 지냈지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1년 전인 2002년에는 전후 이라크의 통치모델을 만드는 ‘연구그룹’을 이끌면서 이라크 출신 미국망명자들, 즉 친미파들 중심의 과도정부 구성안을 내놓기도 했었습니다. 


이집트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나흘 뒤 ‘특사’라는 와이즈너는 유럽에서 열린 안보 관련 회의에 참석해서 무바라크가 권좌를 유지하는 게 ‘핵심적(crucial)’이라면서 독재자를 대놓고 편들었습니다. 와이즈너는 무바라크 쪽 로비 일에 관여해왔을 뿐만 아니라(Obama turned to envoy who could speak to Mubarak as a friend) 이집트 거대 은행의 이사이기도 하다는군요(US envoy‘s business link to Egypt).


아랍은 아니지만 같은 중동이슬람권에 속해 있는 이란의 모사데그 정권 축출 공작은 중동 지역에서 친미독재정권들을 밀어주는 미국의 ‘더러운 공작’의 대명사처럼 돼있습니다. 그걸 저지른 인물이 와이즈너라는 건 비밀도 아니고요. 그런데 이번엔 그 아들이 이집트 기득권층 결탁 논란의 중심에 선 꼴이니... 




(무바라크와 오바마. 출처는 http://www.irannewsnow.com)



재미있지요? 옛날 일들을 뒤져보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놀라울 것도 없는 일이죠. 


이집트 혁명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호스니 무바라크가 늙어 죽거나 병들어 죽지 않고 국민의 힘으로 축출된다면, 중동 현대사가 다시 쓰이는 계기가 될겁니다. 중동의 민중들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온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거니까요. 

비슷한 일이 이란에서 32년 전에 일어나긴 했지만, 그 후 이란에 수립된 것은 파흘라비와는 또 다른 억압적, 전근대적 신정체제였지요. 이집트에서 중동 사람들의 ‘새로운 성공신화’가 쓰여졌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공작’으로 다시 물러서는 일만은 없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