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문제는 이집트

딸기21 2011. 1. 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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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2004년 레바논의 '백향목 혁명'은 다소 희한한 방식(나라를 사기업처럼 경영하던 라피크 하리리가 시리아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괴한에 암살당하면서 오히려 국민들이 하리리를 추모하며 거리로 나서는)으로 일어났지만, 이번 튀니지 '혁명'은 군과 민중들 사이 유혈사태만 없었을 뿐 '혁명의 정석'대로 진행된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은 밥도 못 먹여주는 억압적인 정권에 분노했고, 한 청년의 죽음(그것도 분신자살이라는)으로 그 분노에 불이 붙었고, 결국 독재자는 망명했다. 


20여년간 프랑스에 망명했다가 벤 알리의 축출 뒤 귀국한 야당 지도자 몬세프 마르주키가 분신한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고향인 시디 부지드를 19일 방문해 지지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AP


과도정부가 들어섰고, 정국은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최소한 1990년대의 알제리 같은 꼴로는 가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그보다는 우크라이나나 그루지야 등 2000년대의 동유럽과 비슷한 상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혁명 이후'의 권력 공백기에 일어나는 집권을 향한 정치세력들 간의 투쟁은 필연적이다.

[김향미의 '산문형 인간']
튀니지에서 일어난 '굶주림의 혁명' 

1998년에 주한 튀니지 대사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취재 차 들른 대사관에는 벤 알리 대통령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다. 87년에 정권을 잡았으니 참 오래 대통령을 '해먹었다'. 내가 아는 튀니지 대통령의 이름은 벤 알리 하나 뿐이다. 60년 독립 이래 튀니지의 두 번째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집권한지 24년이 되었으니 대부분의 튀니지 젊은이들에게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통령은 벤 알리 뿐'이었을 터다. 노점 단속에 항의하며 스스로를 불태운 26세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에게도.



생계난에 항의하며 목숨을 끊은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가족들이 19일 고향마을 시디 부지드에 그를 묻으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AFP



튀니지는 북아프리카의 유명한 관광지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오래전 대사관에서 얻어온 튀니지 사진에는 카르타고 시절의 유적들, 푸른 바다와 지중해풍의 하얀 집들이 선명했다. 

'한니발의 후손'임을 자랑하는
(한니발 시대의 카르타고와 현재의 마그레브 아랍계는 전혀 상관없는 민족이지만) 튀니지는 주변국들에 비해 안정된 체제를 유지해왔다. 벤 알리 정권의 부패와 억압에 눌려 있었지만 겉보기에는 '안정된' 나라였다. 

이집트처럼 큰 나라가 아니니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거나 미국이 구상하는 지역질서에서 변수로 등장할 일도 없었다. 같은 마그레브 아랍국에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알제리와도 달랐다. 알제리는 역시 독재정권의 억압에 시달리다가,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형식으로 표출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히딘(반 소련 이슬람 전사)으로 활동하다 돌아온 아프가니스들의 귀환 이후 이슬람 극단세력이 폭력화되면서 외국인 납치와 엽기적인 살해사건들이 빈발했고, 군부 독재정권이 민주선거에서 승리한 이슬람 정당을 무력화시키는 쿠데타를 저지르면서 사실상 내전 상태에 이르렀다.

역시 알제리, 튀니지와 함께 마그레브 3국 중의 하나인 모로코는 남부 서사하라의 분리독립 투쟁으로 한 차례 내전을 치렀고, 지금은 이슬람 극단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다시 홍역을 앓고 있다. 유서깊은 도시 카사블랑카에서는 이라크전 이후 대형 테러가 일어났으며 북아프리카 알카에다 조직이 판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과 달리 '억압 속 고요' 상태였던 튀니지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소식이었다. 내부에서 들끓고 있던 에너지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겠지만. 

문제는 이집트다.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집트는 안녕할까'에 쏠려 있을 것이다. 레바논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요르단이 덜덜 떨었던 것처럼, 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것처럼.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최악의 독재국가는 이집트다. 지구상에서 미국의 위선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보이는 사례도 이집트다. 호스니 무바라크는 81년부터 대통령이다. 벤 알리보다 더 오래됐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이던 시절에도 이집트 대통령은 무바라크, 나이 마흔이 되어 카이로를 방문했을 때에도 역시 무바라크!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19일 홍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열린 아랍경제정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는 튀니지 사태가 주요 의제가 됐다. /AFP


올해로 무바라크는 집권 30년이다. 이집트의 상황은 튀니지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이집트는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교차점에 위치해 있고 인구가 8000만에 이르는 큰 시장이고 외교적으로는 충분히 '대국'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한없이 취약하다. 국가 재정의 3분의1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 곡물값이 조금만 올라가도 가장 먼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빵값 인상에 항의하는 나라가 이집트다. 어느 나라보다도 식량 폭동 가능성이 높고, 정치적 억압의 강도와 불안의 정도도 높다. 

무바라크는 미국을 등에 업고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아랍권 맏형 행세를 하며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국제적 영향력을 지렛대 삼아 미국의 지원을 받고, 국내에서는 경찰국가를 운영하며 억압을 해왔다. 

이번 튀니지 사태가 일어난 다음에도 무바라크는 미국과 협력하며 '뒷수습'을 해줬다. 미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튀니지 사태를 진정시키고 과도정부 수립을 지원한 무바라크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발표했다. 더불어, 레바논 혁명의 원인이 됐던 하리리 암살사건 국제법정을 설치하는 데에 이집트가 협력해준 것에도 감사한다고 밝혔다.

[로이터] 
Obama, Egypt‘s Mubarak discuss Tunisia, Lebanon 

하지만 정작 이집트 내에서 체제의 균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바라크의 '5연임'을 결정지은 2005년 9월 대선은 부정선거라는 지탄을 받았다. 억압과 공작 속에서도 의미 있는 득표율을 기록했던 아이만 누르는 옥에 갇혔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 치러진 총선에서는 무슬림 형제단
(30여년 전 안와르 사다트를 암살했던,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의 원조 격인 조직이다)이 돌풍을 일으켰다.

[오들오들매거진]
'무바라크 세대'의 선택은 
[오들오들매거진] 엘바라데이가 무바라크 대항마로?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이 튀니지의 벤 알리와 같은 형편이 된다는 것은, 특히 미국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무바라크는 이제는 미국의 짐이지만 그래도 없어서는 안 될 방벽이니까. 

조지 W 부시는 이라크를 침공한 뒤 '중동민주화'를 내세우며 이집트를 자극했지만 끝내 무바라크에 강한 압력을 넣지는 못했다. 집권 초반인 재작년 카이로를 방문해 '역사적인 아랍과의 화해 연설'을 했던 오바마는 오히려 중동민주화라는 수식어까지 다 빼버리고 뒤로 한참 물러선 연설을 했다. 아랍하고의 화해를 역설했는지는 모르지만, 부시가 겉으로라도 내세웠던 '민주주의' 문제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이집트에서 튀니지와 같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하지만 노령의 무바라크가 부랴부랴 망명길을 떠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들 가말 무바라크로의 권력 이행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대선을 앞두고 이집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게 뭔가. 튀니지에서도 '혁명'이 일어나는 판에. 무바라크는 늙었고, 나라는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고 있고, 국민들은 불신과 반감을 선거혁명이든 무엇으로든 드러내보이고 싶어 하고, 그것이 억눌린 경험도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집트 외교관 출신인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AU) 사무총장조차도 19일 열린 아랍경제정상회의에서 "튀니지 혁명은 멀리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라면서 "아랍 시민들의 분노와 좌절은 예상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아랍의 영혼은 빈곤과 실업과 전반적인 후퇴 때문에 파괴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될까, 이집트는? 

이집트와 튀니지는 20세기 냉전시절의 체제를 지금까지 끌고 온 나라들이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어 갈지는 몰라도, 구시대적인 체제는 반발에 부딪치게 되어있다. 결국 이집트가 변화해야 중동-아랍으로까지 변화의 흐름이 이어질 것 아닌가.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흐름이, 이슬람 극단세력의 득세라는 반작용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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