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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혁명', 시민들에 달려 있다

딸기21 2011. 1. 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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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시민혁명의 파장이 결국 이집트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24일과 25일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과 정치ㆍ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집트 같은 경찰국가에서 시민 수만명이 카이로 시내 도심에서 시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뉴스죠. 시위대와 경찰 등 6명이 숨진 모양입니다. 1977년 안와르 사다트 시절 식량폭동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라고 합니다. 




원래 24일은 이집트의 경찰의 날입니다. 이집트는 전국 곳곳에 보안경찰과 관광경찰이 깔려 있죠(관광경찰은 관광객들에게서 돈 뜯는 게 일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당국은 카이로 시내에 2만명 이상의 경찰을 배치,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보입니다.

"정권 퇴진" "무바라크 물러나라"

최근 몇 년 새 카이로에서 산발적으로 시위가 일어나긴 했는데 물가 인상에 항의하는 식량폭동 성격이 짙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명확하게 튀니지 혁명에 영향을 받은 정권퇴진 운동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시위대는 “정권 퇴진” “정권도, 대통령도 불법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합니다. 카이로 뿐 아니라 알렉산드리아, 이스마일리아, 시나이 등 주요 도시들에서 수천에서 수만명씩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정권 퇴진을 외쳤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경찰의 움직임입니다. 카이로 중심가 타흐리르('해방')라는 광장이 있습니다. 거기서 일부 경찰들이 시위대와 같이 빵을 나눠먹는 등 동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하네요. 튀니지에서도 폭동이 혁명으로 이어져 24년 독재정권이 축출된 데에는 경찰 등 공권력의 이탈이 큰 영향을 미친 바 있죠.




이집트 정부는 과격 이슬람 단체인 무슬림 형제단이 배후조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과거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안와르 사다트를 암살한 조직이죠. 이집트 정부는 이슬람주의를 억누르면서 무슬림형제단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신들은 국가발전이 정체돼 경제가 무너지고 정권이 억압통치를 펼치는 것에 신물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시위에 나섰다는 쪽에 무게를 싣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시위 참여 서명운동이 일어나 9만명이 서명을 했다 하고요. 시위가 번진 어제 하루 동안 이집트 당국이 트위터 접속을 끊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무바라크는 잘 알려진 대로 공군 장성 출신입니다. 원래는 무색 무취의 튀지 않는 성격이어서 안와르 사다트가 2인자로 중용했다고 하지요. 무바라크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사다트가 암살당하면서 권력을 이어받았습니다. 
그 때 권력층 내부에서는 무바라크가 별 야심이 없어 보이니 대통령으로 세워놓자, 그렇게 합의가 이뤄져서 무바라크가 자리를 물려받았다는데... 그 사람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했겠죠 ㅎㅎ 예상과 달리 무바라크는 철권통치를 휘두르며 1인 독재체제를 공고히 구축, 지금까지 30년째 집권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무바라크가 무너질까요?

어제 시사자키에서 이 리포트하면서 정관용 선생님한테 "알 수 없다"고 했더니 정선생님 왈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ㅎㅎ 사실입니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점은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상황은 분명히 '변한다'는 것. 1986년 필리핀 코라손 아키노의 노란 티셔츠 혁명 때 독재정권에 시달리던 한국에서도 그걸 보고 얼마나 큰 힘을 얻었습니까. 바로 야당 붐이 불었지요. 지금 이집트 분위기가 아마 그 때의 한국 같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혁명'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9월에는 대선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젊은이들, 무바라크 말고는 아예 다른 대통령은 모릅니다. 일각에선 ‘튀니지식 정권 축출’이 이집트에서 재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합니다. 하지만 선거는 국민들에겐 가장 큰 무기입니다. 무바라크가 2005년 9월 대선 때 무려 5연임에 성공했는데, 야당 지도자를 투옥하는 등 극심한 부정선거를 저질렀습니다. 정권도 민심을 모르지 않을 겁니다.
무바라크가 올해 83세인데 다시 6선에 나설지는 불투명합니다.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아들인 가말이 집권 국민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데 아들에게 세습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아직 무바라크가 공식적으로 뭐라 밝힌 것은 없습니다. 
튀니지식 혁명이 이집트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대선 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다시 무바라크가 출마한다 하면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할 겁니다. 가말에게 세습시킨다 하면 어떤 이들은 반대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가말을 지지하겠죠. 지지하는 이들도 가말이 뭔가 개혁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찍어주는 걸 겁니다. 
가말은 아버지보다 개혁적이고 아버지보다 민주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데... '개혁'은 곧 체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지요. 무바라크가 아들에게도 정권을 못 내주는 게 '개혁에 떼밀려가다가 무너지는 상황'을 겁내기 때문일 터이고요. 




미국의 입장은 이집트 정국의 핵심 변수 중 하나입니다.
미국은 무바라크를 밀어줘 왔지요. 그 대가(?)로 무바라크는 자국 내 팔레스타인계(망명자들)를 탄압하고 팔레스타인을 압박하면서(팔레스타인은 이집트와 시나이반도에서 접경하고 있습니다) 이-팔 중재자 역할을 합니다. 
중동 여러 지역의 현안들에서 이집트는 이런 식으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합니다. 이집트는 유엔 사무총장(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아랍연맹 사무총장(아므르 무사),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모하마드 엘바라데이)을 배출한 외교 대국이죠. 북아프리카-중동-유럽을 잇는 요충에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도 있고요.
특히나 이집트는 중동에서는 정신적 중심지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모두 한때 카이로에서 '유학'(내지는 망명)을 했었죠. 사우디아라비아가 근자에 이슬람권 전역에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긴 하지만, '세속적인' 문화권력을 쥐고 있는 건 이집트랍니다. 
이집트는 미국과 중동 사이의 지렛대 역할을 해왔고요. 그래서 미국은 이집트의 독재정권에 돈을 줘가며 밀어주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동시에 이집트와 미국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인데요. 

제가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터키 등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미국의 이중성을 비판합니다. "미국은 사우디와 이집트의 독재정권을 밀어주고 있다"는 겁니다. 조지 W 부시가 감히 뚫린 입이라고(표현이 격해져서 죄송;;) '중동 민주화'를 얘기할 때에 그 '진정성'을 믿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왜냐? 미국은 무바라크와 사우디 왕정을 지원해주고 있으니까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좀 다른 이유에서(말 그대로 근본주의적인 이유에서) 미국을 미워할지 모르지만, 중동의 '상식적인' 사람들이 미국에 반대하는 이유는 미국이 이집트와 사우디의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겁니다. 미국의 그런 행보 때문에 중동의 정치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모든 퇴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그건 틀린 지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바라크 정권의 존재는 미국에는 '방어막'인 동시에, 욕을 먹게 만드는 '짐'입니다. 밀어주지 않으면 무너질 터이고 무너지고 나면 미국에는 순망치한이 될 것인데... 그렇다고 계속 밀어주자니 이건 반미정서를 스스로 부추기는 꼴이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집트 시위가 일어나자 “무바라크 정부는 안정적”이라면서 “무바라크 정부가 국민들의 요구에 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무바라크가 민주화 제스쳐로 국민들 진정시키면 미국은 계속 뒤를 봐주겠다는 뜻 같은데요. 
미국은 어떻게든 무바라크에게 압력을 넣어(예를 들면 '너 니네 국민들 못 달래면 원조 끊는다/줄인다/미룬다' 이런 메시지를 준다든가 ㅎㅎ) 민주화 제스처를 취하고 국민들을 진정시키게 만들려 하겠죠.
미국은 저울질을, 무바라크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 입장. 결국 모든 상황은 이집트 시위가 어느 정도로 발전하느냐에 달려 있는 듯합니다. 이집트 민심이 정말 폭발 직전에 이르거나 폭발하면(즉 민중들의 투쟁 강도가 결정 요인이라는 것) 미국은 무바라크를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버릴 가능성이 높죠. 늘 그래왔듯이. 수하르토와 마르코스를 버렸듯이. 

무바라크가 무너지면 중동은

중동의 역사가 바뀌는 겁니다.
가말이 세습을 한들,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야당 지도자인 아이만 누르나 대권 도전을 선언한 엘바라데이 등 다른 정치지도자가 집권을 한들, 무바라크 체제보다는 민주화되고, 개방적이고, 그래서 안정성이 떨어지는 체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란 제대로 정착하기 전엔 어떤 면에선 참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거니까요.
그러면 중동 정치질서를 '조율해오던' 힘이 사라져버리는 것이죠.
더 나아가, 중동 전역(궁극적으로는 사우디)으로 민주화 바람이 번져나갈 겁니다. '지금당장'은 아니더라도, 10년 뒤 20년 뒤에는 중동을 다룬 모든 책들에 "무바라크가 무너지고 이집트가 민주화된 것을 계기로~~"라는 문장들이 나오겠지요.

사실 무바라크 체제는 '20세기 냉전적 질서에 바탕을 둔 구시대적인 체제'입니다.
그걸 억지로 지금껏 끌고 왔던 것이니 무너지는 게 당연하겠습니다만... 그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혹은 점진적 안정적인가가 문제일 거 같습니다. (그래서 가말을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는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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