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부터 이달 내내 치러지고 있는 레바논의 총선, 오는 17일로 예정된 이란 대선, 올가을 이집트 대선,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파드 국왕의 건강악화설 등으로 중동 전역이 뒤숭숭하다. 70~80년대 집권한 국가수반들의 시대가 가고 본격적인 권력이양기에 접어든 셈이다. 정권 물갈이를 앞두고 있는 중동국가들에서 `차남 돌풍'이 몰아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29일 실시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총선에서는 암살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둘째아들 사아드(35)가 돌풍을 일으켰다. 이른바 `백향목 혁명'으로 불리는 시민혁명, 뒤이은 시리아군 철수의 대세를 몰아 반시리아 바람을 일으킨 사아드는 형인 바하아를 제치고 가문의 정치적 후계자로 낙점됐다.
이슬람 수니파 계열 정당조직인 `미래운동'과 함께 외곽조직인 `순교자 라피크 하리리 리스크'를 이끌고 있는 사아드는 사업가의 길을 걸어왔지만 아버지 사후 막대한 정치적 후광을 안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달 내내 계속되는 총선에서 다른 종파-정치집단과의 연대가 이뤄질 경우 무난히 총리직에 취임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가들은 보고 있다. 사아드는 형에 비해 카리스마가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40) 대통령은 지난 2000년 부친인 하페즈 전대통령에게서 선거 없이 정권을 물려받았다. 바샤르는 아버지의 기대를 받고 있던 형 바실이 1994년 교통사고로 숨진 뒤 뒤늦게 후계자로 떠오른 케이스. 바샤르는 영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다마스커스의 티슈린 군병원에서 안과의사로 일해오다가 아버지 사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영국 국적의 아내 아스마 알 아크라스와의 사이에 3남매를 두고 있다.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차남인 가말(42)도 태풍의 눈 속에 들어있는 인물이다. 올 2월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공포한 뒤 이집트 전역에서 개혁 요구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9일에는 가말 자신이 아버지를 상대로 ‘공정한 경쟁’을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무바라크 대통령 재출마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가말의 권력승계설이 다시 불거져 나오는 형국. 가말은 무바라크 대통령과 영국인 아내 수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대에는 영국 런던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지사에서 6년간 근무했었다.
가말은 아버지보다는 훨씬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집트의 정치평론가 알 무스타크발 가디드는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 냉소할 필요는 없다"며 `가말 카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오랜 독재와 경제난으로 정국이 불안한 상황에서 개혁 연착륙을 시도하기 위해 무바라크가 아들 카드를 내세울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가말이 아버지에 비해 새로운 생각을 갖고 있고 측근정치나 권력집중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의 텔레그라프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가말을 내세운다면 권력 세습이라는 비판이 일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중산층에게서 극단적인 비난은 안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집권 국민민주당은 ‘가말 띄우기’ 프로젝트들을 잇달아 선보인 바 있다.
지난 1969년 집권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아들 사이프(34)는 아버지의 이름을 딴 ‘카다피 국제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화려한 ‘대행 외교’를 펼치고 있다. 베두인 유목민 출신인 카다피 원수는 두 아내에게서 7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 무하마드는 리비아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치를 하기엔 지나치게 소심하다는 평. 이탈리아 프로축구팀 페루자에서 뛰었던 3남 알 사아디는 ‘축구를 좋아하는 말썽쟁이’로 유명하다.
둘째 사이프는 트리폴리의 알파타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한 뒤 정치에 뛰어들었다. 정권승계설이 불거진 것은 최근 카다피 원수가 사이프를 외교무대에 대신 내보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 카다피 원수는 후계구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고 사이프도 지난달 요르단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해 부자 권력승계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루머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올초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사이프는 국내정치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문제와 2003년 핵 포기선언 이후 대미관계 등 외교현안들에 대해서까지 의견을 피력, 사실상 통치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은 돌출행동을 일삼았던 장남 우다이 대신 냉혹한 성격의 차남 쿠사이를 후계자로 내세웠으나 두 아들은 모두 지난 2003년 미군과 총격전 끝에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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