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태국 시위대의 '혈액 시위'

딸기21 2010. 3. 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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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 친나왓 전총리의 복귀를 원하는 태국 ‘붉은셔츠’ 시위대가 참가자들에게서 모은 피를 정부청사 주변에 뿌리며 ‘혈액 시위’를 벌였습니다.

사흘째 방콕 중심부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친 탁신 ‘독재저항민주주의연합전선(UDD)’ 지지자들은 16일 오후 5시쯤 의회 해산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면서 랏차담넌 거리의 정부청사 주변에 혈액을 뿌렸습니다. 이어 집권 여당인 민주당 당사 주변에도 피를 뿌렸고, 다음날엔 총리 관저로 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청사 앞에 피를 뿌리는 시위대/ 로이터


시위대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요구사항을 거부하자 이날 “우리의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면서 피 모으기를 시작, 50만cc의 혈액을 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폭력사태나 충돌은 없었고요.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의사 웽 또찌라깐은 “민주주의를 위한 신성한 희생의 피”라고 설명했으나 태국 적십자위원회와 보건당국은 “채혈용 주사바늘을 재활용해 쓰고 있어 B형 간염과 에이즈가 퍼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혈액 시위’에 눈길이 쏠리는 사이, 아피싯 총리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섰습니다. 아피싯 총리는 이날 의회 각 당 지도자들과 통화한 뒤 “조기 총선은 해법이 아니라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의회 긴급회의도 정족수 미달을 이유로 연기됐다고 합니다.
 
대규모 집회에도 불구하고 폭력·유혈사태가 벌어지지 않은 덕분에 태국 증시는 연 이틀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이른 시일내 진정돼 정국이 안정될 것이라 기대하기엔 이른 듯합니다.

태국 왕실과 군부, 엘리트 기득권층은 서민·빈민들의 지지를 받는 민선 탁신 정부를 2006년 억지로 몰아냈습니다. 이어진 선거에서 다시 친탁신계 정당이 집권했지만 2008년 반탁신 ‘노란셔츠’ 시위대가 폭력시위로 정부를 해산시켰습니다. 당시 시위대가(지금의 시위대랑 반대편입니다) 공항과 정부청사 등을 모두 점거하고 탁신계 정부와 맞섰는데, 그 때 군과 왕실은 뒷짐만 지고 있었지요. 그렇게 해서 민의로 뽑힌 정부를 두번이나 내쫓은 겁니다.
AP는 “이번 ‘헌혈 시위’는 탁신 지지자들이 느끼는 좌절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태국의 유명 역사학자인 찬핏 까셋시리도 “총리가 뒤편에 숨어있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면서 탁신 지지자들을 쉽게 잠재우긴 힘들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왕실·군부의 지원 속에 집권한 아피싯 총리는 영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아 태국인들과는 별로 교감이 없다는 평을 듣습니다. 사실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진 태국에서 거의 살아본 적도 없는 인물이었지요.

15일 왕궁 경비대원 2명이 폭탄투척으로 다친데 이어, 16일에도 방콕 시내 최고행정법원장 자택 부근과 치앙마이 집권당 관련인사 회사 주변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붉은셔츠’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추정되지만 반정부 사태가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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