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아프리카의 초기 역사

딸기21 2010. 3. 2. 23:05
728x90

3000만㎢ 넓이의 아프리카는 5개 대륙 중 4400만㎢가 넘는 아시아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이다. 지구에 있는 대륙의 5분의 1이 아프리카에 속한다. 유럽보다 여섯 배나 크다. 사하라 사막 하나만 해도 미국과 거의 맞먹다. 아프리카는 대양에 둘러싸인 거대한 섬 같은 느낌을 준다.

아프리카 대륙의 극히 다양한 신화와 전설들이 지상에 생명이 생겨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많은 종족과 민족들에게서 ‘생명의 나무’가 중요한 노릇을 한다. 잠베지 강 남쪽 은데벨레 종족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남아프리카의 줄루족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최초의 인간의 흔적을 조사하는 과학자들은 동아프리카에서 나타난 기후 변화에 주목하였다. 아프리카 서부에서는 계속 열대 우림이 지배하였는데, 동부에서는 차츰 땅이 건조해졌다. 거대하게 자란 나무와 무성하게 우거진 식물군이 사라지면서 키가 큰 풀이 자라는 널따란 평원 지대가 나타났다. 서부와 중부 아프리카에서는 높은 나무에 기어오르는 능력이 필요했던 데 비해, 동부 아프리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평지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위험에 부딪히면 얼른 몸을 숙이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반듯하게 일어서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넓은 세상을 향해 떠나기까지의 발전을 위해 필요로 했던 10만년은 호모사피엔스전체 역사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이 기간 아프리카 대륙에서 수많은 민족과 종족들, 부족들이 형성되었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 현생 인류가 생겨나기도 훨씬 전의 일이었다. 유전학자들은 총 13종의 아프리카 초기 인류를 확인하였다.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으로 향한 작은 그룹의 사람들에게서 오늘날 인류의 유전질 대부분이 나온 것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에 엄청나게 다양한 인종이 있는 것은 여기서 기원한다. 그동안 이런 인종적인 풍부함은 상당히 무지하게 ‘뒤엉킨 언어들’이라거나 ‘종족의 카오스’라고 여겨져 무시되어왔다.

금, 다이아몬드, 백금 등 모든 귀금속은 특별한 조건 아래서만 만들어진다. 다이아몬드는 10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약 150km 높이의 바위 덩어리가 누르는 정도의 압력을 받아야 생겨난다. 금은 극도로 뜨거운 물의 압력이 필요하다. 인류가 땅에서 캐내는 황금의 절반 이상이 남아프리카에서 나온다. 지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 가장 많은 지하 지원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는 단연 유리하다.

이집트와 누비아의 접촉에 대한 최초의 보고는 기원전 2450년 파라오 사후레(Sahure)의 명령을 받고 떠난 원정대가 제출한 것이다. 다음번 원정 보고서에는 오락으로 즐기기 위해 붙잡았다는 ‘춤추는 검은 난쟁이’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도 중부 아프리카의 ‘피그미’였을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이 누비아에서 가져온 가장 중요한 보물은 황금과 노예였다.
기원전 750년 무렵 누비아 사람들이 처음으로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기원전 730년 이들은 마침내 이집트를 정복하여 66년 통안 지배하면서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BC690~664년 이집트를 다스린 누비아 출신의 파라오 타하르카(Taharqa)는 이집트와 누비아 전체를 다스린 마지막 검은 파라오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누비아인들의 후손인 누바 사람들은 오늘날 수단 내 비아랍계 주민 중 가장 큰 집단을 이룬다. 1956년 수단 독립 이후로 하르툼 정부와 강제 통합에 저항하는 누바족 사이에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수단 인구 약 2,500만 명 중 누바 사람은 약 150만 명으로 추정된다.

누비아가 이집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중부 아프리카의 콩고 분지에서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났다. 같은 언어 뿌리를 가진 여러 민족이 기원전 800-500년 새로운 정착 지역을 찾아 먼저 서쪽과 동쪽으로, 나중에는 남쪽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들은 ‘반투(Bantu)’라 불리는데, 민족에 따라 약간씩 다르기는 해도 비슷한 발음과 언어 형태로 ’인간’이라는 뜻이다. 반투 민족들은 중부 아프리카를 떠나 남부로 퍼져 나가면서 오늘날까지도 전통에 따라 사는 산족과 코이코이족을 만났다.

사하라 무역로의 남쪽 끝에 서부 아프리카 최초의 왕국인 가나 왕국이 서기 600년 무렵에 생겨났다. 오늘날 세네갈과 모리타니, 말리 등이 자리 잡은 지역으로, 해안가에 위치한 지금의 가나보다 더 내륙 지방이었다.
(중략) 정통 이슬람교도인 알모라비데들이 점점 발언권을 얻었다. 이들은 모로코 출신의 사제 계급으로, 사람들을 이슬람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지하드를 치러야 한다는 폭력적인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런 광신주의로 가나를 공격하였고 1076년에 가나의 왕에게 심각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그 패배는 왕국 전체의 붕괴로 연결되었다. 왕을 중심으로 이슬람에 저항했던 민족들은 남쪽으로 도망쳤다. 오늘날 가나에서 가장 큰 주민 집단을 이루는 아칸 사람들도 아마 이들 도망친 사람에 속했을 것이다.
가나 왕국은 결국 말링케족에 무너졌다. 말링케 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1200년 무렵 가나의 은총으로 봉건 제후의 영지를 세웠다. 1235년 그들의 지도자는 결정적인 싸움에서 가나의 마지막 왕을 이겼다. 그리고 새로운 왕국 말리가 태어났다.
이슬람 사원, 학교, 대학들이 400개 이상의 도시에 세워졌다. 그 중 팀북투(맞는 표기는 통북투다)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도시다. 통북투의 대학들은 스페인과 이집트의 학자들과도 교류를 가졌다.
15세기 초가 되면서 말리는 차츰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1464년에 이슬람 제국인 송가이가 말리 동쪽에 위치한 가오를 수도로 하여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새로운 통치권을 확립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다른 중요한 문명들로는 베닌 왕국과 콩고 왕국, 하우사족의 국가들과 차드 호숫가에 자리 잡은 이슬람 국가인 카넴 보르누 등이 있었다.
아프리카 남부에서는 이 무렵 다른 문명들이 발전하였다. 짐바브웨는 ‘왕의 궁정’이라는 뜻이다. 1100년 무렵 쇼나족의 건축가들이 거대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궁성들을 짓기 시작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축에 견줄 만큼 대단히 발전된 건축술이 나타났다.
짐바브웨의 쇼나족은 황금과 구리 같은 지하자원을 수출하고 동부 아프리카의 항구도시들을 통해 중국의 목화와 도자기도 수입하였다. 짐바브웨의 마지막 왕 마토페 Matope 가 죽은 다음 1480년에 이 나라는 두 왕국으로 갈라졌다. 가나, 말리, 짐바브웨 등은 20세기에 새로 태어나 그 이름을 다시 선택하여 전통을 널리 알릴 수 있게 해준 나라들이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가 맨 먼저 639년 이슬람이 되었다. 새로운 신앙은 이곳에서 수단 방향으로 퍼져 나가 나중에 북부 리비아와 튀니지로 퍼졌다. 800~1250년 이슬람교는 북아프리카 전 지역과 사하라를 넘어 동부 아프리카 해안 지대 전체와 마다가스카르 고지대까지 퍼져 나가 정착하였다. 아프리카북서부 베르베르 사람들과 그 아래쪽 투아레그 사람들은 군대의 압력을 받고 저항을 포기하였다.
이슬람의 가르침은 북쪽으로 갈수록 순수하고, 남쪽으로 갈수록 전통 아프리카 신앙과 혼합되었다. 사하라를 지나는 무역로를 이용하는 상인들은 거의 모두 이슬람교도가 되었다. 이것은 철저히 실용적인 행동이기도 했다. 옛날 그리스어가 그랬듯이, 아랍어가 북부·북동부 아프리카 교양인들의 언어가 되었다.

반투 민족들은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스와힐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처음에는 중앙 집중적인 왕국의 형태가 아니라 독립적인 여러 무역 도시의 형태를 띠었다. 예를 들면 탄자니아 해안에 자리 잡은 킬와나 현재의 케냐에 있는 몸바사 같은 도시들이다. 스와힐리의 대표자들은 이슬람에 ‘삼켜지지’ 않고 이슬람-아랍 영향을 더욱 강력하게 자신의 문화 안에 받아들였다. 아랍어의 일부가 반투어에 받아들여져서,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스와힐리 어군이 생겨난 것을 그 예로 꼽을 수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