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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로비스트의 죽음

딸기21 2005. 5. 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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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에서 ‘독재자 이미지 세탁’을 단골로 맡아 유명세를 누렸던 로비스트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쳤다.

워싱턴포스트 인터넷판은 3일(현지시간) 20년 가까이 워싱턴 정계에서 로비스트로 이름을 날렸던 에드워드 폰 클로버그 3세(사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도했다. 클로버그는 세계적인 독재자들의 이미지를 ‘세탁’해주는데에 탁월한 능력을 보인 것으로 정평났던 인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전대통령과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세스쿠 전대통령,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전대통령 등이 대표적인 그의 ‘고객’이었다.


70년대 이라크 바트당 정권의 부통령으로 정보기구를 이용한 억압정치의 틀을 만들었던 후세인은 지난 1979년 정권을 물려받아 대통령직에 올랐다. 취임과 동시에 후세인은 ‘미국의 벗’으로 떠올랐으며,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은 도널드 럼즈펠드 현 국방장관을 특사로 바그다드에 파견키도 했다. 당시 백악관과 바그다드를 이면에서 연결한 것이 바로 클로버그였다.

전형적인 ‘동유럽 독재자’로 루마니아 민중혁명 때 처형당한 차우세스쿠도 한때는 ‘미국의 벗’이었다. 클로버그는 차우세스쿠를 위해 미국과 루마니아 간 교역 승인을 얻어냈으며, 그 대가로 루마니아에서 성경 인쇄를 허용토록 하는 수완을 발휘했었다.

클로버그는 뉴욕 출신으로 1982년 로비스트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는 “부끄러움은 소녀들이나 갖는 감정”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실제로도 ‘수치를 모르고’ 살았다. 후세인 예찬에 나치즘 동조 발언을 서슴지 않았으며 단지 ‘튀어 보이기’ 위해 유럽 귀족가문 후손인 양 이름에 ‘폰(von)’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검정 망토 차림으로 무도회를 들락거리기도 했다. 고위관리들의 스케줄을 미리 입수, 의뢰인과의 연줄을 만들어주는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대한 부정축재를 저지른 자이르의 모부투를 위해 로비를 하다가, 모부투가 축출되자 곧바로 새 정권을 의뢰인 리스트에 올리는 식의 행태로 인해 로비스트 세계에서도 평판은 안 좋았다. 한 잡지는 그를 ‘워싱턴에서 가장 낯두꺼운 로비스트’로 꼽기도 했었다. 

현란한 인생을 살아온 그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 국무부는 “워싱턴 주민인 클로버그가 1일 로마에서 사망. 향년 63세”라고 그의 사망사실을 간단히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