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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백신 공급난을 겪고 있는 미국 정부가 “미국인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겠다”며 개도국과 빈국들에 백신을 지원해주기로 했던 약속을 무로 돌렸다. 선진국들의 ‘백신 이기주의’ 때문에 보건·의료환경이 가뜩이나 열악한 개도국·빈국의 피해가 커질까 우려된다.
캐슬린 시벨리우스 미 보건장관은 28일 “미국인들의 예방접종이 끝나기 전에는 백신을 다른 나라에 기부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인들에게 백신을 공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8개 선진국들은 자국 백신공급량의 10%에 해당하는 물량을 개도국과 빈국에 지원하겠다고 WHO와 약속했다. 미 정부는 닷새 전인 23일에도 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 공언했는데, 백신 접종에 사람들이 몰리고 공급이 달리자 말을 바꿨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 내 감염자가 이미 수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사망자 수도 1000명을 훌쩍 넘었다. 뉴욕타임스는 백신을 제때 공급할수 있느냐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시험대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원래 이달 중순까지 1억2000만회 접종분을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27일까지 확보된 분량은 5분의1인 2300만회분에 그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선진국과 거대 제약회사들로부터 백신을 제공받아 빈국들에 공급한다는 방침이지만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미국이 약속을 어기려고 하고 있으니 다른 선진국들도 뒤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쿠바를 방문하고 있는 마거릿 찬 WHO 사무총장은 28일 “개도국·빈국에 백신 2억회분을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WHO의 목표는 앞으로 4~5개월 내에 약 100개국에 백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1차 공급대상은 개도국과 빈국들의 보건의료 인력들이며, 다음달 중 선적을 희망하고 있다고 WHO는 설명했다.
하지만 2억회분이 언제 확보될지는 기업들과 선진국들 마음에 달려있다. 백신 제조·생산기술을 가진 것은 주로 미국과 유럽의 거대 제약회사들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노피-아벤티스 등 제약회사들은 WHO에 백신 1억5000만회분을 주겠다고 했지만 언제 전달할지는 알수 없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신종플루 백신 덕에 올 3·4분기 순익이 22%나 늘었다고 29일 발표했다.
찬 사무총장이 말한 2억회분을 확보한다 해도 그걸로는 부족하다. 개도국·빈국의 보건의료 재앙을 막으려면 30억회분은 필요할 것으로 WHO는 보고 있다. 백신 효과는 반년 정도만 지속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10세 이하 어린이에게는 2회 접종을 해야 한다. AP통신은 신종플루같은 광역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70% 이상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실었다. 개도국 중 중국 등 몇몇 나라들은 자체 백신개발에 들어갔지만 나머지 나라들은 WHO만 바라보고 있다.
아직 백신의 ‘정량’에 대해서는 의료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린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일본 의료전문가들 사이에 백신을 1회 접종하느냐, 2회 접종하느냐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고 보도했다. 미국 일부 언론들은 “여성들에게는 백신·치료제를 적게 투여해도 된다”는 ‘학설’까지 내놓을 정도로 백신 문제는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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