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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틀 무렵 들판에 나가 낫을 들고 사탕수수를 자르는 아이들의 실루엣에는 볼리비아의 가난이 그대로 배어 있다. 아동노동은 불법이지만 이 곳에서는 가족들 모두가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아무리 수숫대를 자르거나 광산을 파내도 끼니를 잇기조차 힘들다.”
BBC방송이 12일 전한 볼리비아의 농촌 현실이다. 남미 최빈국 중 하나인 볼리비아 뿐 아니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는 농산물과 자원을 꺼내어 외국으로 내다 팔면서도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 수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다.
지난 십여년 동안 세계화가 개도국과 저개발국의 가난한 이들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세계화 지상주의’가 지구를 휩쓸었지만 교역의 자유화는 기대만큼 빈국의 삶의 질을 높이지 못했으며, 오히려 제3세계에서 지하경제와 암시장 등 비공식 경제부문만 늘어났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무역기구(WTO)는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1990년대 초·중반 이후 2007년까지 자유무역의 활성화가 세계 경제의 비공식 부문을 늘렸을 뿐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내용의 공동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기구는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세계화와 개도국의 비공식 고용’ 보고서에서 “비공식 부문에서는 고용이 늘어났지만 법적 보호를 받는 공식적인 고용은 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체 고용에서 비공식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지 않았고, 빈민들은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의 노동자’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지하경제’로도 불리는 비공식 경제는 마약이나 암시장과 같은 ‘불법 경제’, 세금을 피하기 위한 미신고 부문, 가사노동처럼 통계화되지 않는 노동, 법과 행정의 규제 및 보호대상에서 제외된 불법이주노동 등을 가리킨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인도·파키스탄·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지역 국가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80% 가까이가 비공식 부문에 고용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가내 노동과 미신고 자영업 등 ‘1인 고용 노동’이 늘면서 1997~2003년 비공식부문 종사자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늘었다.
심지어 개도국 경제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졌던 ‘외국 투자유치’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갑자기 원조 등의 형태로 대규모 해외 자본이 개도국에 들어갈 경우 현지 화폐가 약해져 빈민들은 통화불안에 시달리게 되고 비공식 부문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국가가 적극적인 고용창출 정책을 펴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비공식 부문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후안 소마비아 ILO 사무총장은 “교역과 금융의 자유화에는 반드시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보호받지 못하는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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