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칸다하르에 가보고 싶다

딸기21 2009. 10. 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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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남부의 칸다하르는 해발 1000m 높이에 있는 고원도시로서 고대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유명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이스칸다르’라는 인명이나 지명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를 뜻한다. 

기원전 4세기 이 일대까지 진군해왔다가 결국 인도까지 이르지 못한 채 군대를 물려야 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알렉산드리아’) 들을 제국 곳곳에 건설했다. 칸다하르 역시 이스칸데리야, 즉 이스칸다르가 지은 도시 중 하나였다. 칸다하르라는 이름에는 2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가 숨어있는 셈이다.

 

칸다하르 계곡

 

칸다하르 시내의 모스크

 

미르와이스 칸 모스크

 

아프간 땅 대부분이 척박한 사막·고원이지만 칸다하르 주변은 양과 양털, 목화, 과일이 많이 나는 비옥한 지역이다. 아프간 남부에서 이란(페르샤)으로 이어지는 칸다하르, 하자르 등지는 예전부터 페르샤 양탄자의 원산지였고 특히 칸다하르 시는 아르간다브 강을 끼고 있어 당도 높은 석류와 포도가 많이 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1748년 아프간 남부에 두라니 왕조를 세운 아흐마드 샤는 이 곳을 왕국의 수도로 삼기도 했다.

 

두라니 왕조를 세운 아흐마드 샤 두라니가 1747년10월 첫 에미르(이슬람 제후) 대관식을 하고 있다.

 

영국인  Lieutenant James Rattray가 1848년 남긴 칸다하르의 석판화.

 

Governor of Kandahar, Sher Ali's, courtyard in 1881.

 

A view of the Chilzina mountain and adjacent area in 1881.

 

칸다하르에서 머지 않은 곳에는 기원전 260년 경 인도의 아쇼카 황제가 불교로 개종한 뒤 암벽에 새겨놓은 칙령이 있다. 만일 탈레반의 몽매로 인해 파괴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이 칙령은 종교적 관대함과 평화와 비폭력을 설파한다. 

“바로 이것이 황제의 바램이니, 모든 종파의 신자들은 다른 종교의 신앙도 알아야 할 것이다. 다른 종파들을 희생시켜가며 자신의 종파를 찬양한다면 자신의 종교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아쇼카 칙령의 열 두번째 구절이다. 이 칙령은 잘랄라바드와 파키스탄 페샤와르 근처에서 발견된 다른 칙령들 속에도 들어 있다. 또 이 구절은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로도 쓰여 있으며 힌두 계열의 방언으로도 기록돼 있다.

 

칸다하르 부근에서 발견된 아쇼카 황제의 칙령 비문

 

아르간다브 계곡에 있는 Baba Wali 사원


이슬람 이전 고대 이란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자라투스트라도 칸다하르와 인연이 깊었다. 그가 말년에 칸다하르 남서쪽의 아문 호숫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한 젊은 처녀가 멱감으러 왔다가 호수에 들어간 예언자의 정액을 받아들여 평화의 왕 사오시안트를 낳았다 한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팔레스타인에 태어난 신의 아들을 경배하러 떠난 곳도 칸다하르 일대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여러 종교와 문명과 왕조들이 탄생하고 명멸해간 칸다하르는 아쇼카왕의 바람과 달리 오래 평화를 누리지 못했다.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9·11 테러의 책임을 물어 탈레반 근거지인 칸다하르와 잘랄라바드 등 아프간 주요 지역들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한달 뒤부터는 미 지상군을 투입해 칸다하르를 접수했다. 별반 소득도 없는 대테러 전쟁은 벌써 9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2007년, 미군 군사기지가 된 칸다하르 국제공항의 밤풍경

 

Kandahar Airport and associated Military Base from the air looking South-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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