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1945년 베트남 독립선언

딸기21 2009. 9.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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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위치한 베트남은 남중국해에 면해 남북 1600㎞에 걸쳐 뻗어있다. 동서로 최대 폭은 650㎞로, 남북 길이가 훨씬 긴 ‘칠레형 국가’다. 국토는 북부의 고원과 통킹 삼각주, 안남 산지와 해안 저지대, 그리고 메콩강 삼각주의 다섯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원과 산과 평야와 삼각주와 해안을 모두 가진 비옥한 나라다. 특히 통킹, 메콩강 삼각주는 농경의 중심으로서 예로부터 베트남 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어 왔다. 

남부 지역 거의 대부분에 해당되는 메콩강 삼각주는 해발 3m 이하의 저지대로 지금도 국민 절반이 이 곳에 살고 있다. 원래는 이웃한 캄보디아의 크메르 민족 땅이었으나 17세기 베트남 민족이 들어와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곡창지대를 차지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근현대사는 비옥한 땅만큼 수월하게 흘러가진 않았다.

17세기 중반 고도(古都) 후에에서는 프랑스 세력의 도움을 받아 응우옌 왕조가 들어섰다. 하지만 왕조 탄생을 도움 프랑스는 곧 제국주의적 야심을 드러내며 ‘베트남판 병인양요’인 다낭 공격(1858년)을 일으켰다. 그후 프랑스는 베트남을 남쪽에서부터 장악해 들어갔다. 1883년 계미 조약(1차 후에 조약)으로 베트남은 프랑스의 보호령이 됐으며 이듬해에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1890년 가난한 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호치민은 1차 대전 시기 프랑스에 머물며 베트남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1919년 베르사유 평화회의에 베트남 독립 탄원서를 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중국, 일본 등지를 돌며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그는 2차 대전이 진행중이던 41년 베트남으로 돌아와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을 결성했다. 

프랑스 세력이 축출되고 일본군이 잠시 인도차이나 반도를 점령했지만 일본은 45년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물러났다. 치열한 게릴라전을 벌여왔던 호치민은 하노이의 정치적 공백을 이용, 독립과 건국 과정을 주도해나갔다. 45년 8월 19일 드디어 하노이에 입성했으며 9월 2일에는 바딘 광장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곧바로 주석에 취임하고 국무회의를 주관하는 등 발빠르게 독립국가로서의 채비를 갖췄다.

그러나 프랑스는 옛 식민지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점령군이 물러난 뒤 다시 하노이로 돌아온 프랑스 세력은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을 다시 주장했다. 46년 11월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에 인도차이나 전쟁이 벌어졌다. 프랑스군은 8년 뒤인 54년 디엔비엔푸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결국 베트남에서 물러났다. 인도차이나는 그 후에도 미국과 호된 전쟁을 치르며 많은 피를 흘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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