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블레어와 BBC 싸움

딸기21 2004. 1. 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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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정보를 둘러싼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측과 BBC방송의 싸움이 `제2라운드'에 들어섰다. 총리실의 정보조작 의혹을 조사했던 허튼위원회는 블레어 총리에게 면죄부를 줬지만, `언론통제' 논란이 불거지면서 파문은 오히려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세계 최대, 최고의 공영방송이라 불리는 BBC방송의 그레그 다이크(56)사장이 개빈 데이비스 이사장의 뒤를 이어 29일 전격 사임했다. 다이크 사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나의 최대 목표는 국민의 이익과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었다"면서 "회사의 운영방식이 허튼위원회의 비난을 받은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 서한은 BBC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됐으며 정부의 탄압성 조치에 항의하는 직원들의 성명도 함께 공개됐다. BBC 직원들은 런던 시내에서 다이크 사장의 사임과 블레어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방 민영방송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 `방송의 달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다이크 사장은 지난 2000년 BBC 사장에 임명됐다. 그는 4년 동안 방송의 공영성을 살리면서도 상업성을 갖춘 프로그램을 제작, BBC의 `제2의 전성기'를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다이크 사장이 갖는 상징성과, 영국 국민들이 BBC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를 생각할 때 그의 사임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허튼위원회는 앞서 26일 "총리실이 정보를 조작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조작 의혹을 제기한 BBC 보도는 근거없는 것이었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블레어 총리는 이 보고서로 몇달에 걸친 논쟁에서 정치적 승리를 거두는 듯 했으나 다이크 사장의 사임으로 다시 역풍을 맞게 됐다.
여론은 허튼위원회 조사의 중립성과 블레어 정부의 언론 통제 의혹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으로 바뀌고 있다.
광고 없이 시청료로 운영되는 BBC는 10년마다 정부로부터 시청료징수권 연장을 받아야 하는데, 노동당 정부는 오는 2006년 시한인 징수권의 연장을 불허하겠다면서 BBC측을 압박해왔다. BBC는 이번 사건이 블레어 총리측의 방송통제 시도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 언론들은 허튼위원회 조사결과에 대해 "전혀 독립적이지 못한 조사"라며 재조사를 요구했으며 영국기자연맹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보도를 `오보'로 규정한 편협한 조사"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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