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홍콩이 중국에 돌아간 날

딸기21 2009. 7. 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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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은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되돌아간 지 12년 되는 날이다. 1997년 7월 1일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주권환수식에서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아편전쟁으로 빼앗긴 홍콩의 주권을 근 100년만에 다시 찾아왔다”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새천년을 3년 앞둔 홍콩에서는 기념식 며칠 전부터 밤마다 성대한 불꽃놀이와 축제가 열려, 21세기의 용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자축했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아시아의 금융·무역 중심지였던 홍콩이 공산주의 중국 하에 들어가 어떤 변모를 겪을지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전례없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권 환수 12년을 맞아 홍콩의 국민교육센터는 최근 의미있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회보 29일 보도에 따르면 홍콩 초중고생들 중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홍콩인’이라 생각하는 학생들 비율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응답자의 96.0%는 “나는 중국인이라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중복 응답이 허용된 이 조사에서 “나는 홍콩인”이라 말한 학생은 94.2%로 중국인 응답보다 근소하게나마 떨어졌다. 주권 귀속 이래 홍콩 당국은 중국을 조국이라 생각하도록 학생들을 상대로 꾸준히 ‘애국심 교육’을 강화해왔는데, 이것이 본 것 같다고 문회보는 풀이했다. “중국에 절대 찬성”이라는 민족주의적 구호에 동의를 표한 학생들도 69.6%나 됐다.

그동안 중국과 홍콩의 경제운용은 ‘따로 또 같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연결돼 있으면서도 분리된 체제였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폭발적인 경제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은 홍콩과의 경제통합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흔들리는 달러화에 맞서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국이 이달부터 홍콩과 위안화로 무역거래 대금을 결제할 전망이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과 런즈강(任志剛) 홍콩금융관리국 총재는 앞서 29일 홍콩에서 중국-홍콩 간 무역거래를 위안화로 결제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중국과 홍콩은 그간 위안화 결제 준비를 착착 진행해왔다. 중국은 위안화 결제를 병행하게 되면 국제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지위가 더욱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정치적 ‘통합’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학생들에게는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자리를 잡았으나 성인들 사이에서는 그 비중이 훨씬 떨어진다. 
홍콩중문대학 아태연구소가 성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여기는 응답자 수는 38.2%로 여전히 낮았다. “나는 홍콩인”이라는 답변은 몇년 새 크게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49.3%에 이르렀다. 성인 10명 중 4명은 지금도 중국에 귀속 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텐안먼 사태 기념일의 풍경이었다. 베이징 등 중국 본토에서는 당국의 탄압으로 아무런 집회·시위도 열리지 않았지만, 톈안먼 사태 20주년을 맞은 지난달 4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는 무려 15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당시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홍콩 주민들이 중국 본토의 민주화운동을 누구보다 앞장서 기념하고 재평가를 요구하러 나선 것이다.
일국양제 하에서 중국은 홍콩 기본법을 제정, 50년 동안 홍콩의 체제를 보장하기로 합의했다. 홍콩 주민들이 언론·집회·결사의 자유를 누리며 민주주의를 향유할 시한은 38년 남은 셈이다. 홍콩의 민주주의가 38년 뒤에도 지속될지, 이 기간 중국에도 현재의 홍콩과 같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을지는 알 수 없다. 일국양제 실험이 진정한 성공이었는지는 38년 뒤 베이징과 홍콩 사람들이 어떤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는 지에 따라 결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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