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어제의 오늘/ 1992년 리우 환경회의 개막

딸기21 2009. 6. 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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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계 178개국 대표단과 국제기구 대표 등 8000여명이 참석하는 초대형 국제회의가 열렸다. 사상 최초로 열린 지구적인 차원의 환경회의였다. ‘유엔 환경개발회의’라는 이름으로 개막된 이 회의는 정부 대표들이 참가한 지구정상회담과, 환경단체들이 모여 구성한 지구포럼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지구온난화’니 ‘기후변화’니 하는 말들이 일상적으로 쓰이지만 당시만 해도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재앙에 대해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은 일천했다. 훗날 ‘리우 환경회의’라는 약칭으로 불리게 된 이 회의는 기후변화 문제를 놓고 처음으로 세계가 머리를 맞댄 역사적인 자리였다. 
각국 대표들과 환경운동가, 과학자들은 12일 동안 지구온난화, 삼림 보호, 동식물 보호, 개도국을 위한 환경기술 이전, 환경을 고려한 개발 등의 7가지 의제를 놓고 토론을 했다. 
이는 기후변화협약, 생물종다양성협약 등의 국제적인 약속들로 이어졌다. 당시 나왔던 논의들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배출 제한과 ‘지속가능한 개발’ 의제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후 펼쳐진 모든 환경 관련 논의의 기반이 됐다. ‘환경과 개발에 대한 리우선언’과 그 행동계획 격인 ‘아젠다 21’은 기후변화 대처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리우 회의를 계기로 기후변화 문제는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가 됐다. 리우 이후 논의의 핵심에 놓인 것은 기후변화협약의 실천계획으로 채택된 교토의정서다. 
그러나 리우회의 즈음에 환경드라이브를 걸며 ‘그린 라운드(환경기준을 무역과 연계하는 것)’ 등을 주창했던 미국은 교토의정서를 막상 실행에 옮길 때가 되자 말을 바꾸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교토의정서 의회 비준을 받아내는데 실패했고, 뒤이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인간의 행위에 의한 지구온난화 현상은 없다”며 92년부터의 모든 논의를 뒤집어엎으려 했다. 
그 사이에도 유엔에 설치된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는 수차례 회의 끝에 각국 과학자들과 환경전문가들의 견해를 모아 기후변화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지를 경고하는 보고서들을 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환경파괴를 둘러싼 중국과의 ‘네탓 공방’을 접고 2012년 시한이 만료되는 교토의정서 이후의 기후변화 방지 국제체제, 이른바 ‘포스트 교토 체제’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오는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포스트 교토 체제의 틀을 만드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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