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와 같은 인간들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안전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는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를 자처하지만 조금만 비틀어지면 얼마든지 독재자로 변신할 여지가 있다. 그는 독재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대중성, 강력한 의지, 정열, 자존심. 그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우리는 그 어떤 카이사르(황제)도 원하지 않는다.”
네루 자신이 보낸 편지였고, 네루도 자기가 쓴 것임을 웃으며 인정했다. 의원들은 유머러스한 네루가 또 농담을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네루는 자신이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인물임을, 카리스마는 영웅주의·권위주의와 동전의 양면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경계했다. 그를 직접 접했던 미국의 인도학자 스탠리 월포트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네루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잘 생기고 달변이었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이었으며 활달했지만, 동시에 내향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에게는 수많은 추종자가 있었지만 친구는 없었으며, 말년에는 진심으로 믿을 만한 상대라곤 딸 인디라 간디밖에 없었다.”
중국과의 전쟁으로 큰 정치적 파고를 맛본 네루는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고, 1964년 카슈미르 여행 뒤 뇌졸중과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네루는 그해 5월27일 7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장례식은 야무나 강변 샨티바나에서 힌두의례로 치러졌고, 수십만명이 모여 영웅의 마지막 가는 길에 눈물을 뿌렸다.
네루의 유산인 세속주의와 사회주의, 비동맹정책은 그의 사후에도 반세기 넘게 인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엔 사무차장을 지낸 인도 외교관 샤시 타루르는 “인도의 21세기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네루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네루는 현대 인도의 출발점인 동시에, ‘살아 있는 현재’다. 최근 치러진 인도 총선에서 20여년간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네루의 정당인 국민회의가 다시 압승했다. 인디라 간디의 손자인 라훌 간디는 총선 승리를 이끌어 차기 총리 자리를 맡아놨다. 네루와 인디라 간디, 그 아들 라지브에서 라훌로 이어지는 이 집안의 역사에 다시 세계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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