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피흘리며 쓰러진 네다 뒷이야기

딸기21 2009. 6. 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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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테헤란에서 지난 20일 무장괴한의 총에 사살된 ‘네다’는 네다 아가 솔타니(아래 사진)라는 27세 여대생이었습니다. 네다의 약혼자 카스피안 마칸은 영국 BBC 파르시(이란어)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돌 한번 던지지 않았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참변을 당했다”며 당시의 상황과 쫓기듯 치른 장례식에 대해 털어놨습니다.


마칸에 따르면 네다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테란 시내 중심가 카레가르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위대와는 몇 블럭 떨어진 지점이었고요. 네다는 음악 과외교사와 함께 거리에 나갔다가 곤봉을 든 경찰이 들이닥치자 집으로 돌아가려 차를 탔습니다. 하지만 교통정체로 차가 움직이지 않자,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 순간 총알이 날아와 네다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마칸은 “주위 사람들 말로는 민간 복장을 입은 바시지의 짓이 틀림없다고 했다”며 “사람들이 쓰러진 네다를 가까운 샤리아티 병원으로 옮겼으나 너무 늦었다”고 전했다. 네다는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몇분 만에 숨졌다.
네다는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마칸은 “모두의 자유를 바랐을 뿐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활동을 한 적은 없었다”며 “다만 그 순간, 그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네다의 주검은 테헤란 검시소로 옮겨졌습니다. 당국은 조사를 끝내고도 가족들에 시신을 내주지 않고 장기기증을 권하며 시간을 끌었다고 합니다. 더운 기후인 중동에서는 사람이 숨지면 대개 하루이틀 만에 매장을 한답니다. 이란에선 보통 매장 뒤 7일장을 치른다고 하고요.
네다의 부모는 장기기증에 동의한 뒤 딸의 시신을 돌려받아 테헤란 남부 베헤슈티 자흐라 공동묘지에 22일 서둘러 묻었습니다. 당국은 이 묘지에 시위 희생자 공동묘역을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고 마칸은 말했습니다.
마칸 외에, 네다의 가족들은 언론 접촉을 피하며 입을 닫고 있습니다. 친지들은 “(당국이) 검은 띠도 못 두르게 한다”며 비통해했습니다. 가족들은 이날 저녁 시내 닐루파르 모스크에서 추모예배를 하려고 했으나 오토바이를 탄 바시지 민병대원들이 들이닥쳐 조문객 70명을 위협해 쫓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경찰조차 바시지의 횡포에 눈쌀을 찌푸리며 안타까워했다고 마칸은 말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시위에서 숨진 19세 소년의 경우 가족들이 검시소에 약 5000달러를 내고 주검을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란 네티즌들은 “우리와 함께 머무르며 이 도시를 보라”는 네다 애도시를 올렸다. 공교롭게도 네다가 총격을 받은 뒤 곁에서 응급처치를 시도했던 의사는 브라질의 유명 소설가 파울로 코엘류의 친구였습니다. 네다의 죽음을 전해들은 코엘류도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애도의 글과 동영상을 올려 눈길을 끌었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23일 네다 동영상이 세계에 알려지기까지의 짧지만 긴박했던 과정을 보도했습니다.

네다가 쓰러지는 순간을 담은 40초짜리 동영상은 곁에 있던 한 남성이 촬영했다고 합니다. 이 남성은 당국이 웹 게재를 막고 자신과 가족들을 위협할 것을 걱정해, 곧바로 인터넷에 올리는 대신 친구들 몇몇에게 2MB 짜리 비디오 클립을 전송했습니다.
그와 친구들은 “세상에 알려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 파일을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영국 가디언 등에 보냈습니다. 또 네덜란드에 있는 하메드라는 망명자 등, 해외에 체류 중인 이란인 5명에게도 전송했습니다. VoA와 가디언은 동영상을 웹사이트에 게재했고, 해외의 친구들도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에 영상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란 정부는 언론 통제와 인터넷 검열에 에너지를 쏟으면서도 경제가 위축될까 두려워 인터넷 자체를 차단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나브테지 딜론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30년에 걸친 국가의 통제가 보이지 않는 적(정보통신)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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