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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개혁파의 고민...

딸기21 2009. 6. 2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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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정예부대 혁명수비대가 테헤란 시내에 배치되고 친정부 민병대와 경찰이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개혁파의 대규모 집회는 사라졌다. 대학생들의 산발적 시위나 주택가 ‘지붕 시위’ 정도만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르 호세인 무사비와 시위대는 반정부 투쟁을 어디로, 어떻게 끌고갈 지 고민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관심사는 무사비의 행보다. 

무사비는 지난 15일 유혈사태 뒤 결사항전을 선언했으나 23일 기자회견에서는 “진압병력도 우리의 형제”라며 평화시위를 호소했다. 또다른 개혁파 메흐디 카루비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 비유하는 등 연일 당국을 규탄하고 있고 모하마드 하타미 전대통령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시민 저항을 촉구했다. 하지만 무사비의 모습은 대중들 앞에서 사라졌고, 발언은 강경투쟁과 평화시위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개혁운동을 주도해야 할 무사비가 당국의 탄압과 감시 때문에 발이 묶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칸다하르>로 유명한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영국 인디펜던트지와 인터뷰를 갖고 “무사비는 비밀경찰과 공안요원들로부터 24시간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지지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할수도, 사람들을 만날 수도 없는 처지”라고 전했다. 무사비와 20년 지기인 마흐말바프는 무사비 진영의 ‘비공식 대변인’으로서 대선 캠페인에 참여해왔다. 그는 “민병대들 사이에서 파르시(이란어)가 아닌 아랍어가 들려왔다는 얘기가 있다”며 “정부가 아랍계 무장조직원들까지 시위 진압에 끌어들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무사비가 보이지 않는 한 구심점 없는 시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재선거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무사비 측에는 지금 마땅한 투쟁 수단이 없다. 거리에서는 무력에 밀리고 있고, 총파업 같은 수단을 쓰기도 어렵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카림 사자푸르는 “대중시위 대신 파업을 포함한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민·노동자층에는 아마디네자드 지지자가 많아 파업도 쉽지 않다. 지난 20일 “내가 체포되면 총파업에 들어가달라” 했던 무사비 쪽에서도 파업 이야기는 수그러들었다.

싸움의 동력을 찾기 힘든 이유로 무사비의 지지기반을 드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무사비는 영웅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영웅”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총리에 건축가 출신인 무사비는 한때 권력 중심부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의 지지세력은 개혁을 요구하는 젊은층과 여성들, 이슬람 온건파, 아마디네자드에 반대하는 성직자 등 다양한 그룹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누가 개혁의 주축인지도 헷갈리는 형편이다. 자칫 이번 사태가 성직자·권력층 내 세 싸움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무사비의 개혁 주장 자체도 한계를 안고 있다. 무사비는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에 맞서면서도 이슬람 신정체제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말마따나 핵정책·대미정책 등에서도 무사비와 아마디네자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란인들은 1950년대 민의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 정권을 뒤엎은 파흘라비(팔레비) 왕조의 쿠데타와 30여년에 걸친 백색테러·억압통치를 뒤에서 지원한 미국의 행태를 잊지 않고 있다. 88년 걸프 주둔 미군은 이란 민항기를 요격해 290명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아마디네자드는 집권 뒤 이슬람주의자라기보다는 반미 민족주의자로 스스로를 부각시켰다. 이란 내에서는 그의 강경노선 덕에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외교정책에서 개혁파의 운신폭은 좁을 수 밖에 없다. 

장기적으로 이번 사태가 신정체제에 균열을 가져오겠지만 당장 개혁파들이 투쟁 방향을 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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