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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20대 여성의 죽음

딸기21 2009. 6. 2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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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지난 20일 반정부 시위에 참가했던 네다 솔타니라는 여성이 친정부 바시지 민병대로 추정되는 괴한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그의 사망 장면이 담긴 동영상은 삽시간에 유포되면서 반정부 시위의 또다른 도화선이 되고 있다. 
올해 27세인 네다는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알려졌다. 이날 시내 중심가 카레카르 거리에서 아버지와 함께 시위에 참가한 네다는 건물 지붕에 있던 민병대원의 총탄에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현장을 목격했다는 한 의사는 “그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달려갔지만 그는 2분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며 “바시지는 네다를 정확하게 겨냥해서 총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청바지에 흰 스니커즈 차림으로 가슴과 얼굴에는 피범벅이 된 채 쓰러진 네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곧바로 퍼졌다. 미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올라간 뒤 이미지 공유사이트 플리커에 그의 사진들이 줄줄이 업로드됐다. 인터넷 단문 블로그사이트 트위터 사용자들도 네다의 죽음을 곳곳에 알렸다. 
 
파르시(이란어)로 ‘목소리’라는 뜻인 네다는 곧바로 이란 민중의 저항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그들은 네다를 죽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죽이지 못한다”, “네다는 민주주의의 순교자”, “네다는 우리 모두의 누이, 우리 모두의 딸, 자유를 향한 우리의 목소리”
네다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만든 배너가 세계 인터넷 사용자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테헤란에 살고 있다는 마빈 로만이라는 블로거는 “시내의 모든 모스크가 네다의 장례식을 치르게 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시민들은 네다의 이름을 외치며 진압 병력을 피해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네다의 죽음은 시위에 기름을 붓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는 “이제 중요한 것은 선거부정이 아니라 국민을 사살하는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이슬람 시아파들에게 ‘순교’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면서 “1979년 이슬람 혁명도 반왕정 시위 희생자 추모제에서 또다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불이 붙었다”고 전했다.

이란 언론의 시위현장 접근이나 취재가 봉쇄된 가운데, 유튜브와 플리커, 트위터 같은 인터넷 사이트들은 네다의 죽음을 비롯한 현장의 처참한 상황을 알리는 첨병이 되고 있다. 취재가 불가능한 외신이나 이란 관영·국영 언론들은 21일 “테헤란의 시위는 소강국면에 접어들었고 도심은 조용하다”고들 보도했지만 블로거들은 트위터를 통해 “일요일 밤에도 시내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고 전했다. 
테헤란 시내 니아바란의 주택가에서 주민들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도 올라왔다. 한 블로거는 개혁파 미르 호세인 무사비 지지자들이 많이 사는 테헤란 북부 자페라니에에서도 총소리가 들렸는데 현지 언론들이 아무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튜브에는 도심 대로가 연기에 휩싸인 장면도 올라왔다. ‘이라니안뉴스’라는 사용자는 “헬리콥터가 시위대를 향해 화학 가스를 살포했다”고 주장했으나,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쉬라즈의 한 대학에서 곤봉을 든 경찰들이 여학생들을 마구 구타하는 장면도 유튜브를 통해 전해졌다.



네다를 추모하는 트위터의 배너들



이란 혁명수비대, 시위대에 강경진압 경고


이란의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가 22일 “반정부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설 경우 강경진압에 나설 것”이라며 경고했다. 혁명수비대의 경고는 경찰과 바시지 민병대로는 시위를 막을 수 없다는 이란 정권의 위기감의 반영으로 보인다. 유혈사태 공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혁명수비대는 이날 웹사이트를 통해 “시위대의 파괴와 반란 행위는 종식돼야 한다”며 “반정부 시위대가 또 다시 거리에 나온다면 혁명수비대와 바시지와의 ‘혁명적인 대결’을 준비해야할 것”이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반정부 시위는 이란 공화국에 대한 음모”라 주장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보통 ‘파스다란(수호군)’으로 불리는 혁명수비대는 이란 정규군 중 최정예 조직으로 1979년 이슬람 혁명 뒤 창설됐다. 현 사령관은 군 내에서도 특히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진 모하메드 알리 자파리다. 군 내 강경파들을 강화하려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의도에 따라 2007년 사령관에 올랐다. 산하에 7개 여단 12만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시위대를 공격한 친정부 바시지 민병대도 혁명수비대의 통제하에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혁명수비대 출신이다.
혁명수비대는 1980년대 이라크와의 전쟁 당시 이라크 남부 바스라를 공격한 ‘라마단 작전(1982)’을 수행하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1982)’ 때 레바논의 기독교 민병대에 맞서 무슬림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 분쟁에 간여한 사례는 드물다. 그만큼 이번 시위사태에 대한 이란 당국의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앞서 알자지라 방송은 테헤란 거리가 경찰과 바시지 민병대에 장악됐다고 전했으나, 테헤란의 유엔사무소 밖에서 시위대 100여명과 경찰이 충돌했으며 주택가 곳곳에서 경찰과 민병대의 눈을 피한 기습시위가 잇따랐다.
당국은 지금까지 최소 457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국영TV는 지난 일주일 동안 최소 17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으나, 정확한 희생자 규모는 알 수 없다. 총격 등을 받고 쓰러진 시위대의 영상이 확산되는 것으로 미뤄 실제 사망자 수는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이란 정부가 부상자들이 병원에 올 경우 상부에 보고하도록 지시를 내린 까닭에 부상자들이 병원을 기피하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이란 검찰은 시위대에 발포한 것은 정체불명의 무장세력이며 경찰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관영 언론들은 “레바논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 외국 무장조직 대원들의 소행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당국의 비호를 받는 바시지 민병대의 짓이라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김향미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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