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란 여성들, "투쟁은 계속됩니다"

딸기21 2009. 6. 25. 21:11
728x90
이란 테헤란 시내에서는 24일에도 시위대와 경찰·민병대의 충돌이 벌어졌다. 대규모 시위는 소강국면이지만 개혁파 대선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의 선거캠페인을 주도하며 ‘녹색바람’ 일으켰던 여성들은 유혈사태 속에서도 개혁 요구의 중심에 서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선봉에 선 것은 무사비의 부인 자흐라 라흐나바르드(64/위 사진)다. 자흐라는 무사비의 웹사이트에 이날 성명을 올리고 계엄 치하를 방불케 하는 시위 진압을 맹비난했다. 자흐라는 “합법적인 시위를 계속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며 당국에 구금자 석방을 촉구했다. 무사비가 당국의 감시 속에서 발이 묶인 사이, 자흐라는 투쟁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정치학박사인 자흐라는 알 자흐라 여대 학장을 지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초의 여성 대학 학장으로 유명하다. 그는 무사비가 89년 총리에서 물러난 뒤 건축 연구에 매달리며 대외활동을 멈춘 사이에 남편보다 더 왕성한 저술·사회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번 대선에서도 남편을 도와 맹활약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자신의 학위 취득과정이 잘못됐다 주장하자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소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여성 억압에 반대하며 권익향상 운동을 펼쳐 보수파 성직자들에게는 눈엣가시로, 개혁·여성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명망있는 동지로 여겨져왔다.

자흐라가 웹에 투쟁을 계속하자는 글을 올린 뒤 곧바로 체포됐다는 소문도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앞서 당국은 아마디네자드에 반대한 중도파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대통령의 딸 파에제(46)를 체포했다 하루만에 풀어줬다. 파에제는 이란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과 마즐리스(의회) 의원을 지낸 유명 여성정치인이자 개혁운동가다.



Iran's Nobel Peace Prize laureate Shirin Ebadi addresses a speech during a demonstration against the presidential election in Iran outside the European Parliament in Brussels June 24, 2009.

 REUTERS


200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62)도 반정부 투쟁에 다시 나섰다. 에바디는 2005년 대선 때에는 보이콧을 주장해 결과적으로 아마디네자드에게 승리를 안긴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는 젊은 층의 투표참여를 적극 독려했고, 지난 15일 유혈사태 뒤에는 당국을 맹비난하며 평화시위를 보장해달라 촉구했다.
에바디는 24일 알자지라방송과 인터뷰를 하면서 시위 도중 바시지 민병대에 사살된 27세 여대생 네다 솔탄의 가족들을 위한 소송을 맡겠다고 밝혔다. 그는 “힘없는 소녀를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며 “네다를 살해한 자들과 사살명령을 내린 자들에 맞서 네다의 가족들이 법정 싸움을 한다면 내가 그 편에 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에바디는 이슬람법이나 당국의 횡포에 희생된 여성 피해자들을 위한 변론을 주로 맡으면서 수차례 바시지와 비밀경찰의 살해위협을 받았던 대표적인 이란의 민주화·인권운동가다. 지난해 말에도 보안당국은 대선을 앞두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시범케이스로 에바디의 사무실 2곳을 습격해 국제인권단체들의 비판이 빗발쳤다.

이란 여성들이 개혁운동에 나서는 것은, 보수 정권의 횡포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아마디네자드는 집권 4년 동안 여성 탄압에 앞장섰다. 개혁파 집권시절 거의 사라졌던 길거리 ‘복장단속’을 강화했다. 여성 권리를 박탈한 이른바 ‘가족보호법’이라는 것을 만들려 했다가 보수파 성직자들조차도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이란 여성들은 억압적인 신정체제의 피해자로 남는 대신 수십년 동안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이란 개혁운동과 함께 성장해왔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관계협의회(CFR)의 여성전문가 이사벨 콜먼은 “이란의 개혁운동은 출발부터 여성운동과 연결돼 있다”고 설명한다. 자흐라, 파에제, 에바디는 모두 여성·인권·개혁운동에 나섰던 1세대들이다. 이들은 남편·아버지인 무사비나 라프산자니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콜먼은 “여성 유권자들은 무사비의 여성정책이 진보적이어서라기보다는 자흐라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리고 아마디네자드에 대한 반대 때문에 무사비 캠페인에 나섰던 것”이라 설명했다.

한편 24일 테헤란 시내 바하레스탄 광장에서는 시위대 1000여명이 모여 유혈사태에 항의했다. 당국은 헬기로 최루가스를 살포하고 곳곳에서 시위대를 구타,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이란 개혁파 웹미디어 ‘루즈’(www.roozonline.com)는 정부에 고용된 용역깡패를 익명으로 인터뷰, “당국이 농촌 남성들을 불러모아 200만 리알(약 25만원)을 주며 시위대를 폭행하게 했다”고 보도했다. 아랍계 민병대를 시위 진압에 동원했다는 소문도 있다.
시위대는 미 ABC방송에 “바시지 민병대들이 여성 시위자들을 일부러 골라 쇠사슬과 곤봉을 구타·폭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유튜브 등에는 대학 구내와 도심에서 젊은 여성들을 폭행하는 민병대 동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다. 몇몇 시위대는 “이란은 성직자들이 다스리는 신정국가에서 보안병력이 통제하는 경찰국가로 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영 프레스TV는 “바하레스탄 지하철역 옆에서 폭력시위대 200여명을 경찰이 해산했을 뿐 충돌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숨진 네다 사진 일부는 다른 여성

이란에서 시위 도중 희생된 네다 아그하-솔탄(26)은 테러단체 조직원의 여동생으로 오인돼 살해됐다고 이란 관영통신 IRNA가 25일 보도했다.
IRNA는 저격수가 네다를 얼마전 처형된 ‘인민무자헤딘’ 대원의 동생으로 오인해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인민무자헤딘은 친이라크계 사회주의 성향의 반정부 단체다. 앞서 네다의 사망을 곁에서 지켜본 목격자들은 “네다가 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주택가 지붕위에 있던 민병대원이 정조준을 한듯 총격을 했다”고 전했다. 실제 네다는 총탄에 가슴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한편 인터넷에 돈 네다의 사진 중 일부는 ‘네다 솔타니’라는 다른 이란 여성의 사진으로 드러났다. 미국 인터넷정보 블로그 테크더트 등에 따르면 네다 사망 뒤 돌았던 사진들 중 머리수건(히자브)을 쓴 것은 솔타니의 사진(오른쪽)이고, 단발머리에 웃는 모습을 한 사진이 진짜 네다(왼쪽)라는 것이다. 솔타니라는 여성은 본의 아니게 반정부 투쟁의 상징이 되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CNN 등은 전했다.


무사비 격리됐나


이란 개혁파 대선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당국의 극심한 감시 속에 격리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사비는 25일 “당국이 나를 감시하며 격리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무사비는 자신이 발간하는 인터넷신문 ‘칼레메’ 사이트에 글을 올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맞서는 행동을 철회하라는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이란 국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 이후 무사비는 대중들 앞에 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국영 언론들은 그가 시위대와 거리를 두면서 정부와 타협하려 한다는 보도들을 내놨었다. 무사비는 지난 12일 대선 뒤 혁명수호위원회에 선거결과에 불복하며 부정선거 조사를 요청했으나 이후 사흘 동안 모습을 감췄다. 그러다가 15일 시위대의 전면에 나서 자동차 지붕 위에 올라 선거부정을 규탄하고 대선 재실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날 시위에서 이슬람 ‘바시지’ 민병대의 총격으로 사망자가 속출하자 지지자들에게 충돌을 피할 것을 촉구했다. 19일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가 시위 강경 진압을 경고하자 이튿날 집회에 두번째로 모습을 드러내고 “순교자가 될 각오가 돼있다”며 “목숨을 걸고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 선언했다.
 
25일 올린 글로 미뤄보면, 이처럼 엇갈리는 모습으로 보도된 것은 당국의 감시와 탄압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앞서 무사비의 측근인 영화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도 유럽 언론들과 만나 “무사비가 아직 체포되지는 않았지만 24시간 밀착감시를 받고 있어 외부 접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었다.

이란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보안당국은 정치인 100여명을 비롯해 240여명을 반체제 혐의로 구금했다. 무사비와 관련 있는 한 개혁파 웹사이트는 “당국이 이번 시위 사태 이래 대학교수 70명을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