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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들에겐 오바마, 히스패닉계에는 소토마요르

딸기21 2009. 5. 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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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첫 히스패닉 대법관, 사상 세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지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54).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6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새 대법관 지명자를 발표할 때, 소토마요르의 곁에는 어머니 셀리나가 앉아있었습니다.
소토마요르는 대법관 지명발표 뒤 첫 소감을 밝히는 연설에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어머니 덕분”이라며 모든 영광을 어머니에게 돌렸습니다. 소토마요르가 “나는 어머니에 비하면 그릇이 절반 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온 모친에게 감사의 인사를 할 때에는 청중들 일부가 눈물을 짓기도 했다네요.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아의 어머니도 몹시 감동을 하신 것 같다”며 청중들에게 ‘리포트’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이주 2세대 소녀의 ‘아메리칸 드림’ 뒤에서 피땀으로 헌신한 어머니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이런 스토리, 한국에서도 많이 듣습니다만 어디에서건 '홀어머니의 정성'은 감동적인 휴먼스토리가 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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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토마요르(왼쪽)와 어머니 셀리나.
가족사진을 뉴욕데일리가 입수해 인터넷판에 올린 걸 퍼왔습니다.


소토마요르의 부모는 2차대전 중 미국령 식민지였던 푸에르토리코에서 뉴욕으로 이주해왔습니다. 푸에르토리코가 독립한 것은 1948년이니, 정확히 말하면 당시로서는 '이민'은 아니었고 식민 모국으로 이주를 한 것이지요.
영어도 못 했던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곧 사망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셀리나는 낮에는 마약중독자 치료센터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온갖 부업을 하면서 자녀를 키웠습니다.

소토마요르 가족이 살았던 곳은 히스패닉 저소득층 집단 거주지역인 브롱크스데일의 공동주택단지였는데, 시 당국이 이른바 '저소득층 주택개발 프로젝트'로 만든 거라고 합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예전에 많이 지어졌던 시민아파트 같은 그런 거겠죠. 8층짜리 낡은 벽돌 아파트들로 이뤄진 이 곳은 지금도 가난한 히스패닉계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셀리나는 힘들게 번 돈으로 백과사전 전집을 사주며 자식들의 지적 호기심을 일깨웠습니다. 딸 소토마요르는 엄마의 지극정성 속에 프린스턴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법관이 됐고, 아들 후안도 뉴욕대를 나와 의사로 성공했습니다. 후안의 세 자녀 중 두 아들은 한국에서 입양해 간 쌍둥이라고 합니다.

소토마요르는 어릴 적부터 뛰어난 학생이었고 대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히스패닉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예일대 재학시절에는 ‘라틴·아시아·아메리카원주민 학생연합(LANA)’의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대학 동창들은 “학생 자치활동에 열심이어서 학내에서는 유명인사였다”고 전했습니다.
소토마요르는 로스쿨을 나와 뉴욕 지방검찰청과 로펌에서 일을 하다가, 1991년 조지 H 부시 전대통령 때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됐습니다. 그 때는 무사히 지나갔는데, 97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상급 법원인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될 때에는 히스패닉계라는 이유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 때문에 1년 넘게 인준 절차가 지연됐던 겁니다.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그냥 두면 나중에 히스패닉계 대법관 후보가 될 지 모른다"며 반대했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꼼수'를 뒀던 의원들, 흑인 대통령까지 탄생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을지 궁금하군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이 침체된 흑인 사회에 희망을 가져다준 것처럼, 소토마요르의 대법관 지명은 히스패닉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교육열 낮은 저소득층’으로 여겨지던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소토마요르를 보면서 꿈을 갖기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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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브롱크스데일 주택단지(Bronxdale Houses)입니다.
사진은 www.skyscrapercity.com 에서 가져왔어요.


그가 졸업한 브롱크스의 가톨릭학교인 카디널스펠먼 고교에서는 26일 대법관 지명 소식이 알려지자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이벨리스 벨라스케스(18)라는 학생은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나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로렌조 테일러(62)라는 주민은 “브롱크스데일에서 40년 넘게 살았지만, 이 낡은 단지에서 대법관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몇몇 신문들은 오바마와 소토마요르, 눈에 띄는 두 사람의 아메리칸 드림을 함께 묶은 기사들을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히스패닉계 중에 이 정도로 '출세'를 한 사람이 꼭 소토마요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앨버토 곤잘레스도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인물 중의 하나이긴 하죠. 하지만 곤잘레스는 마이너리티의 이익과 평등을 위해 일했다기보다는, 부시 행정부의 입맛에만 맞추다 물러난 인물이어서 소토마요르하고는 좀 경우가 달랐습니다. 

소토마요르가 의회 인준절차를 무사히 통과하면 ‘가장 재산이 적은 대법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그의 재산 신고액은 은행 예금액 5만~10만달러 뿐이었습니다. 연방순회법원 판사로 일하면서 지난해 받은 연봉은 17만9500달러.
대법관이 되면 연봉 20만8100달러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뤄낸 것은 '연봉 2억6000만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꿈이라고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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