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나는 너다

딸기21 2009. 5. 2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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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5공, 6공의 후예 아니랄까봐
이 정권은 황지우마저 쫓아내려고 안달을 냈다고 한다.
한예종 총장을 하던 황지우 시인이 기어이 '표적 감사'에 걸려 물러나게 된 모양이다.
문화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심이 통 없었으니 그런 소식에 내가 어두운 것은 당연하지만
어제 어느 선배를 만났다가 마침 그 얘기가 나왔다.
황 총장을 쫓아내려고, 무지하게 털었단다. 그러면 먼지가 나겠거니 하고.
이 정권의 모든 놈들이 털면 먼지사막을 이룰 자들이니, 지들이 그러면 남들도 그렇겠거니 했겠지.
그런데 무슨 전시회 한다고 정부에서 600만원을 지원받았는데 아직 전시회를 못 열어 보류된 것,
그거 하나 나와서 '공금횡령'으로 어찌어찌 옭아맸단다.
그리고 황 총장이 외국 출장가는데 일정을 앞당겨 하루 먼저 가놓고 미리 보고 안 한 것,
그걸로 또 '공무원 근무지 이탈'이라는 죄목을 씌웠단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세상에 이렇게 깨끗한 공직자가 어디 있었으랴 싶다.
시비 걸려고 오만 군데를 다 뒤졌을 텐데 기껏 저런 흠집 정도였다니 거의 부처님 수준 아닌가.
저걸로 사람을 죄인 만들 생각을 한 자들은 대가리를 댓돌에 찧어야 할 놈들이다.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박힌 눈으로
동트는 地平線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 날이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經도 없다.
經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九萬里 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自己야.
우리 마음의 地圖 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황지우 시인의 <나는 너다>라는 시집은, 내게는 오랜 기억처럼, 사진첩처럼,
그렇게 남아 있는 시집이다.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보다도,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보다도,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보다도,
신경림의 <새재>보다도, 김용택의 <섬진강>보다도, 더 많이 남아 있는 시집.
고등학교 시절 국어선생님께서 읽어보라 하셔서 처음으로 그런 무겁고 어둡고
뭉툭한 듯 하면서도 날카로운 시를 읽었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저 시의 구절은 언제나 잊혀지지 않고 마음에 남아 있다. 

칼이 없으면
날개라도 있어야 해.

이건 네가 깨질 때면
맨날 하는 소리였지.

촛불이 타고 있는 동안
촛불의 靈魂은 타고 있다.

네가 너의 날개를 달면
나에게 날아오렴.

바람이 세운 石柱 위 둥지에
지지지 타들어가는 내 靈魂이 孵化하고 있어.

칼만 있으면
질질 흐르는 이 石柱 밑둥을 쳐버릴텐데.



어느 한 편 스쳐지나치기 미안한 시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칼날 같았던,
아니 독약 같았던 시 한 편.

스시마 해협을 통과하는 핵잠.
물에 '기쓰(きず)' 난다.


이것이 내가 황지우에 대해 갖고 있는 나만의 추억이다.
그런데 이제는 신문 지상에서, 말도 안되는 누명을 쓴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감히 '대학 총장'이라는 친정부 권력을 탐했던 대가다, 라고 이 나라의 보수파들은 말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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