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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8일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과 만나 경제위기에 맞서 협력을 강화할 것을 다짐했다. 유럽과 중동에 이어 중남미 국가들과도 화해를 모색함으로써, 오바마 정부는 전임 행정부시절 빚어진 세계와의 갈등의 매듭들을 거의 푼 셈이 됐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이어져온 쿠바 제재와 같은 오랜 숙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 화기애애한 회담장에 그늘을 드리웠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오바마는 이날 트리니다드 토바고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에서 열린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 참석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 중남미 정상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미국의 중남미지역 정치개입에 대한 오랜 불만들을 경청하면서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제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미국의 경제 침체로 인해 수출부진을 겪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을 위한 경제성장 기금을 창설하겠다고 밝혔으며, 카리브 지역의 안보협력을 확대할 것을 약속했다. 또 기후변화를 막고 재생가능 에너지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것을 제안했다.
오바마는 이달초 유럽 순방 때처럼 이번에도 ‘듣는 외교’에 주력했다. 그는 “배울 것이 많이 있다”며 “좀더 효율적으로 함께 일하기 위해 많은 걸 듣고, 이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고 AP통신 등은 전했다. 다만 중남미 정상들에게 “모든 문제의 탓을 북쪽(미국)으로만 돌리려고는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Venezuelan President Hugo Chavez (R) gives U.S. President Barack Obama a copy of
"Las Venas Abiertas de America Latina" by author Eduardo Galeano during a meeting
at the Summit of the Americas in Port of Spain, Trinidad April 18, 2009. /REUTERS
"Las Venas Abiertas de America Latina" by author Eduardo Galeano during a meeting
at the Summit of the Americas in Port of Spain, Trinidad April 18, 2009. /REUTERS
그는 이번 회담에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도 통역을 사이에 놓고 웃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대통령을 향해 “지옥의 유황불 냄새가 난다”고 일갈했던 차베스는 오바마의 만남 뒤 “전임자에 비하면 훨씬 지적인 인물”이라 칭찬했고, 회의 끝날 무렵에는 지난해부터 중단된 양국간 외교관계를 복원할 뜻을 비추기도 했다.
차베스는 오바마에게 우루과이의 좌파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 <라틴아메리카의 노출된 혈관>을 선물했다. 하지만 스페인어로 된 책이어서 오바마가 읽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이 논평(?)을 했다. (어쨌든 1971년 출간된 이 책은 차베스 덕에 갑자기 아마존닷컴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오바마는 이어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도 만났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 중에서도 특히 차베스의 단짝인 모랄레스는 최근 미국이 쿠데타·암살기도를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모랄레스는 “오바마는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가 상호존중에 바탕을 두고 이뤄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변화를 약속했다”고 전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의 관계개선 의지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하지만 볼리비아는 오바마가 말한 변화가 어떤 건지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주문했다.
모랄레스는 지난해 마약밀매 연루 혐의로 자국 주재 미국 대사를 내쫓았다. 차베스가 덩달아 베네수엘라 주재 미국대사를 내쫓고 워싱턴의 자국대사까지 소환하는 바람에 미국과 볼리비아·베네수엘라 간 관계는 매우 험악해졌었다. 이번 오바마와의 만남을 계기로 얼어붙은 관계도 해빙무드를 탈 것으로 기대된다.
오바마는 또 로널드 레이건 정권 때부터 미국의 숙적이었던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과 만나 악수를 나눴다. 오르테가는 니카라과의 합법적인 대통령이었으나 1990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개입된 쿠데타로 쫓겨났고, 2006년 선거로 재집권했다.
오르테가는 오바마와 인사를 나눈 직후에 50분에 걸쳐 미국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중남미 침탈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1961년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부터 거론하며 미국의 잘못들을 열거했지만, 오바마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지는 않았다. 이는 ‘미국은 밉지만 오바마는 미워하지 않는’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의 미묘한 이중적 감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됐다.
오바마는 오르테가의 연설 뒤 “내가 생후 3개월 됐을 때에 일어났던 일(피그만 침공)을 가지고 날 비난하지는 않아줘서 고맙다”고 재치있게 받았고, 정상들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정상들간의 오찬을 마친 뒤 차베스는 “다음 회의는 쿠바의 아바나에서 열리길 바란다”고 말해, 미국이 1962년 제명한 쿠바를 미주기구에 복귀시켜주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내가 쿠바 문제로 나설 입장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쿠바의 친구이고 미국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쿠바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번 회의에서도 회의장 전체에 ‘쿠바 문제’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고 전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역시 오바마의 새로운 중남미 접근법을 높이 평가하면서 “하지만 결국 쿠바 문제가 미국의 변화된 자세를 보여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룰라는 “이 대륙에서 어떤 나라도 배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쿠바 경제제재를 해제할 것을 미국에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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