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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 비장, 진지... 오바마의 취임 연설

딸기21 2009. 1. 2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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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일 취임 연설은 차분하면서도 비장했습니다. 과거 선거전에서 보여줬던 청중을 흥분시키는 카리스마와 열정보다는, 진지하게 ‘미국의 현실과 과제’를 짚어나간 점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외신들은 오바마의 연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부풀리는 대신 냉정하면서도 설득력있게 국정방향을 제시했다면서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버락 오바마

U.S. President Barack Obama gestures while delivering his speech after taking the Oath of Office to become the 44th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during the inauguration ceremony in Washington, January 20, 2009. REUTERS/Jim Young



뉴욕타임스(NYT)는 오바마가 조지 W 부시 전대통령을 뒤에 앉혀놓고 취임연설을 하면서 전임 행정부와의 결별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조는 점잖았지만, 도청과 고문수사 등 반인권정책들을 적시하며 “우리의 집단적인 실패”라 말하는 등 전임자의 잘못을 확실하게 비판했다는 건데요. 신문은 “1933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가 전임자 허버트 후버의 공안통치를 비판한 이래로, 전임 행정부와 전혀 다른 행보를 걸을 것임을 이렇게 명시한 것은 오바마 뿐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오바마는 대외관계와 경제문제 등에서 다양한 현안을 거론하며 ‘실용주의’를 강조했으나 인권과 민주주의, 환경 등 ‘기본적인 가치’가 바탕에 깔린 실용주의여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히 했습니다.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전쟁으로 미국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떨어졌다는 인식을 보여준 거죠.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가 ‘위기’와 ‘도전들’을 강조한 것에 주목했네요.
오바마는 이번 연설에서는 자신의 슬로건이었던 ‘변화’와 ‘희망’(BBC의 표현을 빌면 '오바마의 만트라 mantra')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2개의 전쟁과 무너져가는 경제, 정부를 믿지 못하는 국민들, 미국식 생활양식을 깨뜨리려는 적들” 등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고난의 겨울을 맞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임자들을 비판하는 동시에 새 정부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줄이고 국민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려는 뜻으로 보이네요. BBC방송은 위기 상황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미국인들을 정신차리게 만든” 연설이었다고 평했습니다.

실제 오바마의 연설은 ‘위기의 지도자들’의 말에서 여러 부분을 따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바마 연설에 등장한 “폭풍우가 닥치고 구름이 몰려온다(gathering clouds and raging storms)”는 표현을 놓고 일부 평론가들은 “진부한 문학적 비유”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는데요, 이 표현은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의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국가적 단합을 호소한 부분은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2기 취임연설에서, 경제지도자들의 확고한 의지와 낙관주의를 강조한 구절은 1933년 루즈벨트의 연설에서 가져왔습니다. 단호한 의지와 영감으로 적들에 맞서야 한다는 것은 존 F 케네디의 연설에서 빌려온 것이었다고...

오바마의 연설에 화려한 수사는 없었고 문장은 간결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이날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내셔널 몰 광장에는 휠체어를 탄 2차 대전 참전용사들과 민권운동에 참여했던 중년들, 아이팟(iPod)을 손에 든 틴에이저들이 한데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설의 내용보다도, 연령·세대·성별·인종을 초월한 이들이 그 순간 한 사람의 연설을 들으며 한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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