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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50년, 기로에 선 쿠바

딸기21 2008. 12. 2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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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1일로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사회주의 혁명이 50주년을 맞는다. 옛소련의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뒤에도 쿠바는 북한과 함께 외부세계에 문을 닫아걸고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지키는 몇 안 되는 국가로 남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This Jan. 2, 2007 overhead view shows the Miramar section of Havana, Cuba. (AP Photo/Mike Stewart)



반세기 혁명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극도로 엇갈리는 가운데, 쿠바 정부는 경제난 속에서도 자축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1959년1월1일 쫓겨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살았던 대통령궁은 지금은 ‘혁명박물관’이 돼 있다. 이 곳에서는 이달 들어 혁명 기념 스카프를 두른 어린이들이 기념식 준비에 한창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들이 50여년 전 망명길에서 돌아와 독재자를 축출한 32세 혁명지도자의 옛 모습을 알리는 없지만, 피델은 혁명군의 손자손녀 뻘인 이 어린이들에게도 여전한 우상이다.


아바나에서는 피델 미화작업이 한창이다. 라팜파 대로에서는 며칠 전부터 <아시 에스 피델(Asi es Fidel·이것이 피델이다)>이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언론인 겸 저술가 루이스 바에스가 쓴 이 책은 피델의 인간적인 면모와 혁명의 고뇌 등을 담은 400여개의 ‘증언’들로 구성돼 있다고 25일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전했다. 


일요일마다 킨타아베니다 거리에서는 “비바 피델(피델 만세)”을 외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공산당 간부들은 “피델에 필적할 혁명가는 레닌과 호치민 정도”라며 연일 찬양 경쟁을 벌인다. 국가평의회 위원이자 시인인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위대한 지도자 피델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주장했다.




미 중앙정보국(CIA) 지원을 받은 망명자들의 공격 시도(‘피그만 침공’), 미-소 핵갈등으로 인한 군사적 위기(‘쿠바 미사일 위기’), 옛소련 붕괴 등 속에서도 정권을 유지해온 자체가 쿠바와 피델에게는 하나의 ‘승리’라 할 수 있다. 50년 동안 쿠바의 숙적 미국에서는 10명의 대통령이 집권했으나 쿠바에서 권력자는 오로지 피델 뿐이었다.


쿠바는 비록 가난하지만 지표로만 보면 세계 최빈국은 아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실패한 국가’들과 달리 쿠바의 교육·보건의료는 선진국 수준이다. 미국의 개입에 휘둘려온 중남미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문자해독률, 평균기대수명, 의료보장제도를 자랑한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기억하는 노년층들은 “혁명 이전의 쿠바는 모든 것을 미국에 내어준 매판국가였다”며 혁명의 정당성을 굳게 믿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와 독재에 따른 폐해는 무시할 수 없다. 90년대 옛소련 붕괴 뒤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쿠바는 자급자족 경제와 사적 교환체제를 일부 허용, 간신히 파국을 면했다. 그러나 과학기술 발전은 거의 없었고 세계 경제성장에서 한참 뒤쳐졌다. 혁명 이래 100만명이 독재와 빈곤에 지쳐 쿠바를 떠났다. 이같은 ‘쿠바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는 체제의 실패 혹은 ‘혁명의 배신’을 반증한다. 혁명 50년이 지나도록 쿠바에는 정치적 자유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피델의 딸조차도 미국 플로리다에서 반카스트로 투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Cuba's President Raul Castro gestures during a welcome ceremony outside Planalto Palace in Brasilia, December 18, 2008. REUTERS/Jamil Bittar (BRAZIL)



피델은 2년 전 장출혈로 수술을 받고 동생 카스트로 라울 국방장관에게 권력을 일시 이양했다. 올 2월에는 국가수반인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넘겨주고 완전히 물러났다. 지금 피델은 그란마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것 말고는 공식적인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


마이애미 헤럴드 등 미국 언론들은 “그래도 여전히 쿠바는 피델의 나라”라며 피델이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일단 라울 체제가 권력이양기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라울 집권 뒤 우려됐던 소요 사태나 정치불안 조짐은 없었다. 


라울은 올여름 쿠바를 강타한 허리케인 피해 구호를 서둘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대외관계 개선도 적극 추진했다. 최근 브라질, 중국, 러시아 국가원수가 연달아 아바나를 방문하면서 쿠바가 국제무대에 복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반체제 인사 탄압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유럽연합(EU)에도 손을 내밀었다. 


쿠바인들 사이에서도 미국 버락 오바마 차기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바나 시내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피에 굶주린 살인마로 묘사한 대형광고판이 얼마전 소리없이 사라졌다. 라울은 “관타나모 같은 중립지대에서 오바마와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관계 개선 의지를 시사하기도 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올해 82세의 피델은 물론이고, 라울도 내년 6월이면 만 78세가 되는 고령이다. 그의 건강이 언제까지 받쳐줄 수도 알 수 없거니와 라울이 미래의 도전을 극복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라울은 중국보다 더 느린 속도의 점진적 개혁개방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정책은 ‘페르페치오나멘토(perfeccionamento·효율화의 완성)’, 즉 시장경제에 문을 열기보다는 내부 시스템을 효율화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치개혁과 자유화의 움직임은 느리고 미온적이기만 하다. 


그러나 당국의 통제 속에서도 느리게나마 쿠바에서는 세계와 ‘접속’하는 젊은이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들이 거북이 개혁을 참고 기다려줄 것이라 기대하긴 힘들다. AP통신은 “래퍼, 게이, 블로거, 위성TV를 몰래 시청하는 10대들, 문신과 피어싱(피부에 구멍을 뚫어 고리 등을 다는 것)으로 치장한 젊은이들이 라울의 최대 적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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